20일(현지시간)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유세가 열린 미 오클라호마주 털사 은행센터(BOK) 경기장에는 수천명의 지지자가 몰렸다. 하지만 열기는 기대 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단했던 유세를 3개월 만에 재개했지만 약 1만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겨우 6,100명이 들었다. 자리가 모자랄 것에 대비해 야외공간까지 추가로 만들었지만 사용조차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 선거캠프 측은 티켓 수요가 1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달랐다.
털사 유세를 계기로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서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 시작부터 틀어졌다. 예상을 크게 밑도는 참가인원 때문인데 코로나19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폭로가 겹쳐 지지도가 급락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을 수사해온 제프리 버먼 뉴욕 남부지검장이 법무부와의 갈등 끝에 이날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한몫했다. 반면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후원금 모금액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 이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하는 다수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졸린 조를 5개월 뒤에 물리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좌파 폭도가 우리 역사를 파괴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기념물을 더럽히고 우리의 동상을 무너뜨리려 한다”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모든 사람을 처벌하고 핍박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플로이드 항의시위대가 남부연합의 기념물을 없애는 데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미국의 노예해방 기념일인 19일 ‘준틴스데이(Juneteenth Day)’에 시위대가 수도 워싱턴DC에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장군이었던 앨버트 파이크의 동상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린 뒤 불태웠다.
실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편가르기가 주를 이뤘다. 그는 99년 전 털사에서 벌어졌던 백인들의 흑인 대학살과 플로이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시위대와 언론이 지지자들의 행사 참석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를 ‘쿵플루(Kung Flu)’라고 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이어갔다. 코로나19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동맹 때리기도 빼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여러 국가에서 병력을 빼는데 이는 그들이 우리를 적절하게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독일이 그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며 원래는 끔찍한 합의였다는 주장을 반복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가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직면한 여러 위기나 자신과 관련한 스캔들을 다루지 않고 분열을 초래했다”며 “재선 가능성을 되살리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가 심하게 흔들렸다”고 전했다.
행사 진행도 매끄럽지 않았다. 털사 행사를 준비했던 트럼프캠프 관계자 중에서 6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나왔다. 주최 측은 지지자들의 경기장 입장 전에 온도를 체크하고 마스크를 배포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유세 이후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와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시위대 간의 충돌도 벌어졌지만 폭력사태는 없었다.
이처럼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전 부통령은 순항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정치자금으로 8,080만달러(약 977억원)를 모금해 월 단위 최고액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7,400만달러)을 600만달러 이상 앞섰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장을 찾은 온 인원이 예상보다 적어 격노했다”며 “여론조사 수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의 연임 전망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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