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9년 어느 날, 가수 조영남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에게 부탁을 하나 한다. 그림 한 점에 10만원씩 줄 테니 주문하는 내용대로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송씨에게 과거 만들었던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달라고 하기도 했고, 추상적으로 제공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알아서 그림을 그려오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그림에다 조씨는 배경색을 덧칠하거나 일부 요소를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넣었다. 그중 21점을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10여명에게 팔았고, 조씨가 그림값으로 받은 돈은 총 1억8,000만여원이었다. 송씨 같은 보조자를 썼다는 것과 같은 작업방식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처럼 조씨가 무명 화가를 고용해 그림을 대리제작한 사실은 2016년 처음 알려졌고 검찰은 그를 사기혐의로 기소했다. 구매자들이 그림을 사면서 조씨가 직접 작업했다고 착각하게 했으니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논리였다.
이 같은 ‘그림대작’ 논란에 휩싸였던 조씨는 약 4년여 만인 25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이날 조씨의 사기혐의 상고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씨는 판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조수 화가를 쓰는 게 미술계 관행이라는 조씨 측의 주장을 인정한 셈이다. 대법원은 검찰이 상고심에서 새롭게 제기한 저작권법 위반 주장에 대해서도 애초 기소한 사실에 대해서만 심리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송씨 등이 주된 창작자였다는 건 설명 가치가 있는 정보이며 신의칙상 고지의 의무가 있다”며 “구매자들을 기망한 거라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2심의 결론은 무죄였다. 2심 재판부는 “송씨는 기술적 보조자일 뿐”이라고 봤다. 조씨가 작품을 직접 그렸는지가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 단정하기는 어렵고, 보조자를 쓴 게 알려지면 그림의 구매가가 달라졌을지도 불명확하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따라서 사기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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