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사달이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말이다. 비정규직인 공항 보안요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취업준비생들은 ‘사다리 걷어차기’라며 분개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임기 내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했다. 비정규직 남용을 막고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만 받는 ‘불공정한’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정책 방향성은 옳았다. 문제는 속도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며 일자리 창출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여러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임에도 가속 페달을 밟았다.
정책 과속으로 사달을 빚은 것은 또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다. 소득을 늘려 수요를 높이면 기업 투자가 활성화돼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정책 목표는 가상하나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해고가 속출하고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화됐다. 원자력 발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꾀한다는 탈원전 정책이 빚은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멀쩡한 에너지 기업을 망가뜨린 것도 그렇지만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다며 삼림을 마구 훼손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격언도 있지만 정책에서는 방향 못지않게 속도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22개월가량 남았다.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로 나아갈 주춧돌을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가로놓여 있다. 마이너스 성장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정부 역할이 사뭇 중요하다. 나랏빚이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정부 재정 투입을 늘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동시에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구조개혁, 복지지출 재설계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면서도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인재양성·교육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과학기술·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효율성 제고를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야 할 길이다.
‘순자(荀子)’에 천리마 이야기가 나온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지만 둔한 조랑말도 열흘이면 간다. 가는 데를 알지 못하면 천리마라도 도달하지 못한다.” 원래 선한 인간이 되기 위한 수신(修身)의 방법론으로 설파한 것이지만 정부 정책에 적용하지 말란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명확한 목적지와 로드맵이 있느냐다. 목적지가 정해졌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지런히 가면 결국 도달한다. 인간 세상에 천리마는 없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조랑말만 있을 뿐이다. sain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