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1년간 유급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우모 조교는 관리책임자인 신모 교수에게 업무상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피해자는 지난 1993년 10월18일 서울민사지법에 담당교수·서울대총장·국가를 피고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약 6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지도교수의 성희롱 범죄를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으로 당시 무명의 인권변호사가 승소를 이끌어 화제를 모았다.
#장면2. ‘즐겁게 일하기 위해’ 둘이 셀카를 찍자며 집무실에서 셀카 촬영 때 신체적 밀착을 했다. 피해자 무릎에 나 있는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피해자의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다. 집무실 안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적 접촉을 했다.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해 피해자에게 속옷 입은 사진을 전송하는 등 성적으로 괴롭혔다. 사실로 확인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추행, 통신매체이용음란, 형법상 강제추행 등이 적용되는 성범죄다.
장면1의 인권변호사와 장면2의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동일인이다.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행정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칭했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타깝게도 성추행 피고소자(혹은 성범죄 피의자)로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됐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이후 성희롱 예방이 법제화됐고 그 또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직장 내 성폭력 예방교육을 성실히 이수해온 듯했지만 본인 스스로 가해행위를 성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성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는 구절에서 숨이 턱 막힌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 멈출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성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던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이어 올해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직원 성추행까지 권력형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정의·평등을 부르짖었던 진보진영에서 벌어진 일이다. 개인의 일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이 지켜왔던 스스로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욕보였다는 점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가해자는 세상과 작별을 고했지만 세상에 남겨진 피해자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왜 4년이나 참았나”라며 “계획된 행동이 아니냐”는 억측을 내놓았다.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자리에 들었다”며 피해자를 관노에 비유했고 비판 성명을 낸 여기자협회에 ‘창X’라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여당 대표는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를 째려보며 “XX자식”이라고 일갈했고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는 “여성들이 그만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정작 자신의 딸이 60세가 넘는 남사친을 데려오면 흔쾌히 수락할 준비가 돼 있는가. 참고로 박 시장 역시 피해자 또래의 딸을 두고 있는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최근 피해자와 연대하자는 해시태그 운동과 함께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가해였다”는 문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정세랑 작가의 신작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는 심시선이라는 여성 예술가가 버텨냈던 차별과 폭력의 시대를 지나 시선이 가족의 삶 속에 오롯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린다. ‘어떤 자살은 최종적인 가해였다’는 숨죽인 질타는 우리가 박 시장의 죽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단초를 제공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고 썼다. 가해자의 시간은 지나고 피해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피해 여성이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혹여라도 무차별적 비난과 미움 속에 상처를 받지 않기를, 부디 끝까지 버텨내기를 바란다.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고 최숙현 선수처럼 약한 자는 죽어서야 진실을 말할 수 있고, 강한 자는 죽어서도 진실을 묻는다면 이 세상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세상이 박 시장이 꿈꿨던 아름다운 세상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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