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 자료에 2018년 본인 명의 소비액이 ‘0원’인 것처럼 기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에도 이 후보자 아들이 스위스 유학 기간에 1,200만원 이상을 본인 명의로 각종 단체에 기부한 것처럼 기재되고 2019년에는 이 후보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머니 이름으로만 소비·기부 활동을 한 것처럼 적혀 혼란이 일어난 바 있다. 해당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들을 발급한 국회사무처 시스템 상에서 맨 윗줄에 표시돼야 할 근로자 본인 소비액이 맨 아래로 내려가는 오류가 발생한 것인데, 유학 자금 논란 등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후보자 측이 문제가 된 시기의 영수증 내역조차 신중히 살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회사무처는 본지 보도가 나간 직후인 17일에서야 시스템을 바로잡았다. <관련기사> ▶[단독] 이인영 지난해 소비 '0원', 아들은 유학중 거액 기부?... 청문자료 논란
17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와 국회에 따르면 박지원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안에 첨부된 2018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의 ‘소득공제·세액공제 항목’ 첫째 줄에는 신용카드·현금영수증·직불카드·전통시장 사용액이 모두 ‘0’으로 기입됐다. 같은 페이지 상단 인적공제 항목에 근로자 본인인 박 후보자가 첫째 줄, 배우자가 둘째 줄에 기재됐는데 하단의 소비액과 기부금 부분은 모두 둘째 줄에만 금액이 몰렸다. 순서대로만 파악하면 박 후보자는 지난해 본인 이름으로 소비를 1원도 하지 않고 배우자 명의로만 쓴 셈이 됐다. 박 후보자의 아내인 고(故) 이선자 여사는 그해 10월15일 별세했다.
전날에는 이인영 후보자의 2018년, 2019년 원천징수영수증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특히 2018년 영수증은 이 후보자 아들의 스위스 유학 기간이 길게 겹쳤다는 점에서 누가 얼마나 돈을 사용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였는데도 가족 순서가 뒤엉킨 채로 제출돼 야당 측이 혼란을 겪었다. 이 후보자를 둘러싼 최대 쟁점인 아들 스위스 유학 관련 소비액을 파악하는 데 있어 이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정확한 지출을 알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실에 따르면 이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에 첨부된 2018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의 ‘소득공제·세액공제 항목’ 하단 넷째 줄에는 국세청에 신고된 263만원, 신고되지 않은 971만원 등 총 1,234만원이 기부금으로 기재됐다. 같은 페이지 상단 인적공제 항목에 근로자 본인인 이 후보자가 첫째 줄, 이 후보자 아들 이모씨가 넷째 줄에 표시됐던 만큼 야당 측은 자연스럽게 1,234만원의 기부금 역시 상단 넷째 줄에 기입된 이씨가 낸 것으로 해석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이나 국회사무처처럼 전산으로 연말정산 기록을 입력하는 사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소득공제·세액공제 항목 상·하단의 행이 어긋나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국회사무처 확인 결과 넷째 줄의 지출·기부금 내역은 원칙적으로 첫째 줄에 위치했어야 할 근로자 본인, 이 후보자의 것이었다. 국회사무처 시스템 오류로 2018년 박 후보자와 이 후보자 본인 소비액이 맨 아랫줄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 아들이 2018년 스위스 유학생활 10개월을 합쳐 1년간 자기 명의의 신용·직불카드·현금을 쓴 액수는 당초 야당이 파악했던 2,647만원이 아니라 368만원이었다. 이 후보자 측에서 스위스 유학자금 자료를 제출하기 전까지 야당 측에서 참고했던 수치 자체가 잘못돼 있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세청 영수증 서식 변경에 따라 지난해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 같다”며 “보도를 보고 17일 시스템을 바로 잡았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 측은 지출 명세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줄곧 답변하지 않다가 지난 16일 본지가 인적공제 표기 순서대로라면 아들의 2018년 기부액을 후보자가 대신 낸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비로소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통일부는 “상단의 인적공제 항목과 인별 기부금 항목 내역이 다른 순서로 배열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때도 배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 후보자 측과 통일부는 또 “영수증의 오기이고 (야당이나 언론이) 오독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나 본지 취재진이 국세청에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전산 입력을 하는 사업장에서는 인적공제 항목과 소비액 항목의 행이 달라질 수 없다. 영세사업장에서 손으로 영수증을 직접 작성하다가 실수를 하지 않은 이상 일반적으로는 인적공제 기입 순서대로 소비액을 따지는 게 맞다는 것이다.
유학 당시 이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지출 내역이 인사청문의 핵심 사항으로 떠올랐고 인사 검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의혹을 해소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 후보자 측과 통일부는 “국회사무처에서 발급받은 대로 냈을 뿐”이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후보자 본인이 보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도 인사청문준비단 스스로 의문을 갖지도, 의문 제기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도 않아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아들 스위스 유학 기간인 2018년 지출내역은 후보자 측이 직접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야당도, 언론도, 국민도, 발급기관인 국회사무처도 인사청문요청안만 봐서는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이 후보자 본인과 아들 중 누가 유학 기간 기부를 했고 신용카드를 썼다는 것이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자료였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심각한 오차가 발생했다면 이 후보자나 통일부 쪽에서 본인이 낸 자료에 관한 오류를 살피지 않은 데 대해 사과를 하는 게 먼저인데 항상 문제 제기에 침묵을 하다가 기사가 나오면 그때서야 적반하장 식으로 반박만 한다”고 꼬집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