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가운데 또 다시 정의·평등·공정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학생 땐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전설이었지만 이후엔 널리 알려진 직장 경력 없이 30대 중반부터 정치인이 돼 10억원 이상 자산을 모으고 20년째 정치 거물이 된 그의 삶 자체에 논란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특히 대를 이어 군대를 면제받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던 코스를 통해 단 1년 만에 스위스 학교 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의 아들은 청문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의·평등·공정의 가치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던 이 후보자가, 자신이 일평생 적폐로 몰았던 사람들과 다른 인생을 산 게 맞느냐는 도덕적 의심이 먼저 확산하는 모양새다. 각종 의혹 제기 때마다 본인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통일부 대변인실을 앞세워 “악의적 왜곡 주장을 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하며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는 점도 화제가 되고 있다.
아들, 단 1년 만에 ‘스위스 학위’ 취득... 엄마는 이사회 임원
이 후보자를 둘러싼 첫 번째 청문회 쟁점은 아들의 스위스 유학 문제다. 야당 측에 따르면 이 후보자 측은 애초에 아들이 유학을 다녀온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야당의 지적이 있고 나서야 유학 문제에 대한 대응을 하나씩 내놓는 형국이다. <관련기사> ▶[단독] 이인영 아들 '스위스 유학' 지원 기관에 엄마가 이사회 임원
본지 취재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자 아들 이모(26)씨는 서울 구로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13년 2월부터 일종의 대안학교인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일명‘파티’)’이라는 디자인 관련 교육기관에서 수학했다. 대다수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이 교육기관을 이 후보자나 배우자인 이보은 (사)농부시장 마르쉐 상임이사는 설립 초기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사는 ‘파티’ 설립 초기엔 조합원도 아니었다. 이씨는 고교 졸업 직후 국내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하지 않고 이 학교에 1기생으로 들어갔다.
‘파티’는 2013년 안상수 전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이 파주출판도시에 세운 기관이다. 교육부에 정식 인가를 받은 학교는 아니다. 다만 스위스 바젤디자인학교, 영국 UCA 등과 학부·석사 과정 편입 협약을 맺고 해당 학교들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게끔 했다. 이씨는 2017년 2월까지 ‘한배곳’이라는 4년여 간의 교육과정을 마쳤다. 그러면서 해당 교육기관에서 2015년 148만8,000원, 2016년 330만원의 소득도 거뒀다. 이 소득이 어떤 업무에 대한 대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학금 성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국내 과정을 마친 직후인 2017년 4월부터는 어머니인 이 이사가 이 학교의 2기 이사회 멤버가 됐다. 이 학교 이사진에는 이사장인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사업협동조합 명예이사장을 비롯해 박정희 정부 시절 중앙정보부장·법무부 장관·검찰총장을 지낸 고(故) 신직수씨의 딸이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의 부인인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아내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유력 인사들이 포진됐다. 또 안상수 전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및 현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민병걸 서울여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금누리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등 미술·디자인업계에 이름을 날린 쟁쟁한 인물들도 포함됐다. 여기에 일반 졸업생 학부모로는 유일하게 이 후보자 아내가 합류했다. 4년 과정과 2년 과정을 모두 합쳐 총 21명의 졸업생이 있었지만 우연찮게도 학부모 중 하필 디자인과는 무관한 ‘현직 국회의원의 아내’가 이사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3주밖에 안 돼 어수선하던 시기였다.
이씨는 그 후 이 학교를 통해 2017년 8월 스위스 바젤디자인학교에 학사 편입생이 돼 유학을 떠났다. 지원 가능한 1기 졸업생 14명 중 2명이 선발됐고 그 중 하나가 이씨였다. ‘파티’에 따르면 유학 지원은 학생 자율로, 바젤디자인학교의 독자적인 절차에 따라 선발이 이뤄진다. 이씨는 여기서 단 1년 만에 학사 학위를 받고 2018년 10월 귀국했다. 이씨는 운도 좋았다. 이씨가 학사 학위를 취득한 이듬해인 2019년부터는 ‘바젤디자인학교 측의 요청으로’ 학사 학위 이수 기간이 2년으로 늘었다.
‘파티’는 지난 17일 입장문을 내고 “이 후보자 아들의 스위스 학위 연계에 따른 편입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다”며 “바젤디자인학교 학생 선발 과정은 해당 학교의 고유 권한이므로 배우자의 영향력 행사는 있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입장문 맨 끝에는 ‘파티 스승과 함께 드림’이라고 덧붙였다. 이 학교에는 여러 ‘스승’이 있는데, 이 후보자의 아내도 ‘삶’을 가르치는 ‘스승’이다.
“유학비용은 4,200만원”... 영수증 오기는 설명 안해
아들 스위스 유학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자금에 대한 논란이 컸다. 물가가 높은 스위스 특성상 유학자금이 비쌀 것이라는 통념이 자리 잡은 탓이다. <관련기사> ▶[단독] 이인영 지난해 소비 '0원', 아들은 유학중 거액 기부?... 청문자료 논란
이 후보자 측은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15일 1년 학비가 1,200만원이라고 밝혔다. 이후 16일 스위스 유학 기간 총 체류비는 3,062만원이라고 공개했다. 이 후보자는 “집세로 월평균 50여만원을 지불하고 생활비로 월평균 170여만원을 사용한 것”이라며 스위스 물가에 비해 집세가 너무 적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룸셰어(공간 일부 임대)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지나친 억측은 명백한 허위 주장” “악의적 왜곡 주장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경고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스위스 바젤 학생들이 언론의 과도한 접근에 항의하고 있다”며 “사생활 침해가 없도록 해 달라”고 다그쳤다.
스위스 유학 비용이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는데 인사청문요청안에 첨부된 유학 기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의 오기조차 살피지 않았던 점도 논란이 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실에 따르면 이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에는 아들이 스위스 유학 기간인 2018년 1,234만원을 본인 명의로 각종 단체에 기부한 것처럼 기재됐고, 2019년에는 이 후보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머니 이름으로만 소비·기부 활동을 한 것처럼 적혔다. 특히 2018년 영수증은 이 후보자 아들의 스위스 유학 기간이 길게 겹쳤다는 점에서 누가 얼마나 돈을 사용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였는데도 가족 순서가 뒤엉킨 채로 제출돼 야당 측이 혼란을 겪었다. 신용카드 등 총 소비액과 기부금 항목 순서가 인적공제와 달랐던 탓이었다.
이 후보자 측과 통일부는 또 “상단의 인적공제 항목과 인별 기부금 항목 내역이 다른 순서로 배열됐다”고 반박하면서 배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설명도 하지 않았다. 또 “(야당이나 언론이) 영수증을 오독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나 국세청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전산 입력을 하는 사업장에서는 인적공제 항목과 소비액 항목의 행이 달라질 수 없다. 영세사업장에서 손으로 영수증을 직접 작성하다가 실수를 하지 않은 이상 일반적으로는 인적공제 기입 순서대로 소비액을 따지는 게 맞다.
유학 당시 이 후보자 본인과 아들의 지출 내역이 인사청문의 핵심 사항으로 떠올랐고 인사 검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의혹을 해소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 후보자 측과 통일부는 “국회사무처에서 발급받은 대로 냈을 뿐”이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애초에 아들 스위스 유학 기간인 2018년 지출내역은 후보자 측이 직접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야당도, 언론도, 국민도, 발급기관인 국회사무처도 인사청문요청안만 봐서는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이 후보자 본인과 아들 중 누가 유학 기간 기부를 했고 신용카드를 썼다는 것이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자료였다.
이 문제는 결국 국회사무처 시스템 상 오류로 밝혀졌다. 국회는 지난 17일 이를 시정했다. 이 후보자 아들이 2018년 스위스 유학생활 10개월을 합쳐 1년간 자기 명의로 신용카드·직불카드·현금을 쓴 액수는 당초 야당이 파악했던 2,647만원이 아니라 368만원이었다. <관련기사> ▶[단독] 박지원 청문자료에도 2018년 소비 '0원'... 국회 "영수증 시스템 시정"
‘부정교합’으로 신검 연기되고 ‘척추병’으로 면제... “현역 의지” 의문
이 후보자 아들의 병역 문제 역시 청문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석기 의원이 이 후보자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이씨의 병역자료에 따르면 이씨는 2014년 4월에 앞서 2013년 10월21일 이미 첫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간 아들이 2번의 신체검사만 받은 것처럼 밝힌 이 후보자 측 설명과 달리 신체검사는 총 3번 이뤄졌던 것이다. <관련기사> ▶[단독] 이인영 아들, '부정교합'으로 신검 연기 뒤 6달만에 '척추병'으로 軍면제
이씨는 당시 검사에서 부정교합을 이유로 7급 판정을 받고 당일 바로 ‘재검 대상’으로 통보받았다. 7급 판정의 경우 일반적으로 검사 대상인 본인이 각종 진단서와 증빙서류를 병역판정 전담의사에게 제출해 확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씨의 2013년 신체검사 결과 통보서에는 부정교합 치료 기간이 6개월로 적시됐다. 재검 사유는 아니지만 이씨의 병명으로 ‘문신 또는 자해로 인한 반흔’도 기재됐다. 실제로 이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사진에는 그가 신체 일부에 문신을 한 것으로 보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씨는 부정교합 치료 기간인 6개월이 지나 2014년 4월28일 다시 한 번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정교합이 아니라 척추관절병증으로 5급 전시근로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2013년 10월 신체검사 당시에는 제시하지 않았던 병명이다. 직접적인 면제 사유가 되진 않았지만 ‘기흉 또는 혈흉’ ‘악안면 영역의 그밖의 수술을 한 경우’라는 병명도 검사 대상에 추가됐다. ‘기흉 또는 혈흉’은 2013년 땐 역시 검사하지 않았던 질병이다. 당시 병무청은 이씨의 척추관절병증 관련 진단서와 외래기록, 투약기록 등을 확인해 5급 면제 판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자 아들이 신체검사를 받을 때마다 각기 다른 여러 병명과 관련 자료들을 병무청에 제시한 것을 두고 “현역 입영 의지가 강했다”는 이 후보자 측 주장과는 배치되는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척추관절병증이 오래된 고질병이었다면 왜 첫 신체검사에서 관련 질병을 병무청에 제시하지 않고 굳이 6개월 뒤 재검을 받으면서 제시했는지도 의문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이씨는 2년이 지난 2016년 3월17일 돌연 병역복무 변경 신청서를 내고 다시 한 번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미 아들의 첫 검사 때부터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이 후보자는 그해 4월13일 서울 구로구갑 지역구에서 3선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이씨는 자신이 희망하는 병역 형태를 표기해야 하는 신청란에 ‘현역 희망하나 안 되면 사회복무라도’라고 적었다. 병역 의지를 내비치기 위해 추가한 메모라기보다는 서식 자체가 신청서를 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떤 병종·일자를 원하는지 반드시 볼펜 등으로 적어야 하는 칸이었다. 이씨는 이 칸에 병역 희망 일자는 적지 않았다. 이씨는 2016년 재검에서도 5급 전시근로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에는 이씨의 2015년·2018년 의료비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이씨는 재검을 받기 직전인 2015년엔 46만6,720원의 의료비를 지출했지만 두 번째 면제를 받고 스위스 유학을 떠난 2018년엔 1만6,000원만 의료비로 썼다.
이 후보자 측은 17일 “군 면제 의혹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려드린다”면서도 2013년 10월 아들이 재검 대상이 돼 한 차례 검사가 유예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온전하게 마치지 못한 점은 설령 그 이유가 질병 때문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평생 마음의 짐이 된다”며 “병역복무 변경신청을 하면서까지 현역 입대를 희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악의적 왜곡이 없기를 바란다”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86세대’ 전반에 대한 실망 확산... 李 “악의적 왜곡 말라” 반복
상당수 국민들의 비판은 ‘정의와 평등을 그토록 강조하던 이인영조차 자기 아들은 정작 군대도 보내지 않고 대신 해외 유학을 보내 학위를 땄다’는 더 원초적인 쪽에 몰리는 분위기다. 어찌 됐든 ‘그 이인영’의 아들은 군 면제·해외 학위를 얻었고, ‘그 이인영’의 아내는 뜬금없이 재벌가 인사·미술계 유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디자인 교육기관 이사가 됐다는 점에서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특권 대물림 교육 체제 중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조국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정의로운가란 문제의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며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제도화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는 달리 그는 학생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실망은 곧 ‘86세대’ 정치인 전반에 대한 실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입시·취업 과정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가 숱한 패배를 겪은, 현역 입대가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적극 증빙하지 않은 질병을 병무청이 발견해 군 면제를 통보받은 지인은 주변에 한 명도 없는, 아니 군 면제자 자체가 한 명도 없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후보자 같은 19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시대를 대변하고 국민들과 공감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하는 목소리들이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연일 “악의적인 왜곡 주장을 하지 말라”는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정치 선배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965년 군 복무 중 대학을 다니고 졸업까지 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잘못된 일이고 송구스럽다”며 즉각 논란을 잠재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떠나 국민들의 예상은 한 지점에서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차피 이 후보자를 임명할 것이란 예상이다. ‘현직 국회의원 불패’ 신화와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견제할 야당 의원 자체가 적은 것도 이 후보자에겐 호재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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