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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대화보다 정파가 먼저…그들만의 민주노총에 '민주'는 없었다

'완전한 노사정 대타협' 결국 무산
민주노총이 23일 온라인 대의원대회를 열고 ‘원포인트 사회적대화’ 합의문을 부결시켰다. 22년 만에 민주노총까지 참여하는 ‘완전한 노사정 대타협’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는 결국 무산됐다. 합의문 부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김명환 위원장 등 지도부 총사퇴와 계파 갈등에 따른 내홍에 휩싸이게 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된 23일 밤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은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문 승인 안건에 대해 대의원 1,479명 중 과반인 1,311명이 투표했지만 찬성 499명, 반대 805명, 무효 7명으로 출석인원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코로나19로 고용이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사회적대화가 필요하다”며 ‘경사노위 밖 교섭 테이블’인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강경파의 위원장 감금 조치로 1일 노사정 대표 합의 서명식이 불발됐고 이날 합의문까지 부결됨에 따라 “제1노총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문 부결로 민주노총은 당장 내홍에 휩싸이게 됐다. 김 위원장이 노동계 안팎에서 금기시됐던 계파 문제까지 폭로한 상황에서 강경파의 사퇴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위원장 조기선거 체제로 접어들면 김 위원장이 임기 동안 추진한 사회적대화의 성과 평가를 놓고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민주노총이 노사정 테이블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으로도 관측된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강경파, 질문도 토론도 '보이콧'
‘얇은 껍질’. 민주노총에 대한 비유다. 민주노총이라는 껍데기만 있을 뿐 내부에서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의 정파와 산업별 노조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결국 ‘원포인트 사회적대화’ 합의문이 부결됐다. 얇은 껍질이 찢어진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불발에 이어 경사노위 밖에서 진행한 사회적대화의 합의문마저 거부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민주노총의 사회적대화 참여는 불가능하고 정부·여당과의 관계도 경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합의문 승인을 위해 23일 열린 민주노총 71차 임시 대의원대회는 시작부터 종료까지 강경파의 철저한 무시 속에 진행됐다. 대의원대회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열렸다. 하지만 ‘민주노총 71차 임시대의원대회’ 홈페이지에는 단 두 건의 질의문과 한 건의 토론문만 게시됐다. 질의문 두 건은 이번 합의문 승인에 우호적인 언론 노조의 대의원 두 명이 보낸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반대파는 무시하기로 전략을 짠 듯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내 정파 갈등의 단면이다. 잠정 합의문이 나온 지난 6월30일 민주노총은 합의문의 문구와 내용을 놓고 이튿날인 7월1일까지 마라톤 회의를 했고 서명식 당일에는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등 강경파 조합원들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실상 감금해 행사를 무산시켰다. 의견이 분분해 홈페이지에서도 열띤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노골적으로 ‘보이콧’한 것이다. 강경파는 지도부가 21일 연 오프라인 토론회에도 반대 의견을 피력할 대의원을 내보내지 않았다.



김명환 위원장 사퇴→조기 선거체제로
노사정 합의문이 대의원대회의 승인을 받는 데 실패하면서 민주노총의 정파 갈등은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안이 대의원대회의 추인을 받지 못하면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경파의 김 위원장 흔들기는 각 정파가 차기 위원장직을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은 만큼 김 위원장 임기 동안 추진된 사회적대화의 공과를 놓고 전면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회적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투쟁을 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주장이 도드라지지만 내부에서는 ‘제1 노총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하며 사회적대화를 하지 않으면 정부에 민주노총의 주장을 전달할 수 없어 오히려 손해’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가 다르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무기계약직인 ‘공무직’ 조합원이 대폭 늘었다. 공무직 임금 인상 및 고용안정 등 김 위원장 지도부에서 시행한 정책들에 대해 공공 부문 정규직들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김 위원장의 사퇴 공언은 지키는 게 맞을 것이라고 본다”며 “민주노총의 정파 구도는 항상 뿌리 깊게 자리잡혀 있다. 정파 구도 자체가 허물어지지 않으면 분란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투쟁밖에 모르던 조직'에 진통 자체가 변화 분석도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민주노총이 사회적대화 테이블로 들어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공식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을 배려해 총리실에 노사정 교섭 테이블을 꾸렸다. 심지어 ‘경사노위 외 사회적대화’를 요구한 사람도 김 위원장이다. 민주노총이 제안한 사회적대화를 정작 민주노총이 걷어차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경사노위 무력화’를 우려한 한국노총의 반대에도 민주노총을 포섭하려 노력한 정부는 체면만 구기게 됐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 간의 관계도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여유가 많지 않다”며 “액션플랜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회적대화를 기다려서 하기 쉽지 않다.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한국노총과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투쟁밖에 모르는 조직’인 민주노총이 사회적대화 합의문을 놓고 진통을 겪는 모습 자체를 큰 변화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는 “위원장이 정파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의원 간에 이런저런 논란이 오고 가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노총이 처음 겪는 일”이라며 “이는 귀중한 변화이며 민주노총도 과거에 일부 정파가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다시 생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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