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을 제때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채권자인 금융회사가 전세계약을 해지한 후 대출금을 회수해서는 안 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대출금을 연체하면 전셋집도 넘길 수 있도록 계약을 했다 해도 세입자의 주거생활 안정이 우선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롯데카드가 권모씨를 상대로 낸 대출금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파기 환송했다고 24일 밝혔다. 롯데카드는 권씨가 전세대출금을 제때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세계약을 해지하고 대출금을 갚으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권씨는 대한토지주택공사(LH)와 전세 계약을 맺고 아파트에서 살던 지난 2015년 11월 롯데카드로부터 2년간 전세자금 약 7,100만원을 대출 받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엔 ‘대출 기간 종료로 대출금을 즉시 갚아야 할 때 롯데카드가 요구하면 아파트를 임대인인 LH에 즉시 명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2년 안에 대출금을 못 갚으면 아파트를 비워야 한다는 뜻이다. 권씨는 2017년 11월까지 대출금을 다 갚지 못했고, 롯데카드는 다음해 3월 대출금을 갚으라고 최고장을 보냈다. 그리고 전세 아파트는 LH에 넘기고 대출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1·2심 모두 롯데카드가 이겼다. 재판부는 권씨와 LH 간 임대차 계약이 2018년 1월로 종료됐다고 보고 아파트를 LH로 인도해야 한다고 봤다. LH는 권씨에게 계약을 갱신하는 대신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고, 그대로 계약이 끝났다고 본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권씨에게 대출금은 갚아야 하지만 아파트까지 넘겨줄 이유는 없다고 보고, 부동산임대 부분만 원심을 파기했다. 전세대출 계약 조항이 있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 보호가 우선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권씨가 LH와의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봤다. 권씨는 계약 기간이 모두 끝난 후 LH가 제시했던 보증금 인상분을 모두 냈고, 원심 판결 시점까지 그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LH가 발급한 계약사실확인원에도 임대차기간이 올 1월 말까지로 돼 있었다. 따라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대인은 표준임대차계약서 위반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아니면 전세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임대차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임대차 기간은 2년이 된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은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임대차 계약 갱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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