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편투표 활성화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오는 11월 대선을 연기하자고 제안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나절도 안 돼 말을 바꾸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우편투표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도 “대선 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다. ‘대선 연기론’을 거론한 후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친정인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쏟아지자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해프닝으로 끝난 이번 대선 연기 제안이 대선 불복을 암시하는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선 연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선거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우편투표 도입으로 2020년은 역사상 가장 오류가 많고 사기를 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적절하고 안심하고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미룬다?”는 글을 올린 지 약 9시간 만이다. 그러면서 “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고 나서 투표지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편투표의 문제를 지적했다.
여전히 우편투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는 있지만 대선 연기를 거론한 지 몇 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것은 그만큼 반발이 거세지며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소속된 공화당 의원들마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정치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임을 자처하는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회 역사상 전쟁·경기침체·내전을 거치면서도 연방 차원의 일정이 잡힌 선거를 제때 치르지 못한 적은 없다”며 “11월3일(대선일)에도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우편투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선거는 그대로 치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제안이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며 대선 날짜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되는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트윗을 통해 “트럼프는 겁에 질려 있다. 그는 자신이 바이든에게 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위터에 ‘투표일 결정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내용의 헌법 제2조1항을 올리며 우회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존 루이스 하원의원 장례식 추도사에서 “우편투표를 훼손하며 국민의 (대선) 투표를 좌절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권력자들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돌아선 민심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자 선거 결과 불복 가능성까지 내비친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근거 없는 대선 연기까지 거론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선에서 지면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답하지 않겠다. 나는 지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답해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제안은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민들의 믿음에 터무니없는 균열을 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연기의 근거로 삼은 우편투표의 신뢰성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CNN은 부재자투표는 괜찮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해 “우편투표든 부재자투표든 두 제도는 근본적으로 같다”며 “투표용지를 신청, 수령해 투표하고 발송하면 안전한 곳에 보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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