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보편적인 우편 투표(universal mail-in voting)’에 의한 선거 사기 가능성을 주장했다.
부정투표의 우려가 있다며 11월 3일 미국 대선 연기(延期)의 운을 뗐지만 오히려 역풍의 맞으며 곧바로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오전 트위터에 이번 대선을 우편투표로 진행한다면 “역사상 가장 부정확한 엉터리 선거가 될 것”이라는 글을 올리며 돌연 ‘선거 연기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이어지는 트윗에서 “우편투표는 이미 대재앙으로 판명 났다”라거나 “외국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손쉬운 방식”이라고 문제로 삼으면서도 “부재자투표는 괜찮다”고 밝혔다.
미국 내의 반발과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공화당 내에서는 물론 지지층에서도 공격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개최한 언론 브리핑에서 대선 연기 관련 질문에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선거와 결과를 원한다”며 “나는 연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선거를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나는 (결과까지) 몇달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고 나서 투표지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 우편투표 문제를 지적하며 대선에서 패배에 대비한 불복의 핑계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
투표소 투표 외에 3가지 투표 방식 가능해 |
우편투표는 유권자들이 집으로 투표용지를 수령해 기표 뒤 우편으로 발송하는 제도다.
미국에서 투표소에 가지 않고 투표하는 방식은 ‘우편(mail-in) 투표’와 ‘부재자(absentee) 투표’, ‘조기(early) 투표’ 등 3가지로 나뉜다.
우선 우편 투표는 질병·장애 등으로 선거일에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유권자가 미리 우편으로 투표 용지를 신청해 선거 당일 특정 시각까지 자신의 기표 용지를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부재자 투표는 유권자가 대부분 우편으로 투표하지만, 주(主)대상자는 해외에 있는 미군과 미국인들이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조기 투표는 유권자가 선거일 전에 특정 장소에 가서 미리 투표하는 투표다.
우편투표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호도는 증가 추세다.
미 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2016년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23.6%가 우편으로 투표했다. 이 중 부재자 투표가 17.7%였고, 미국 내 우편 투표가 5.9%였다. 2008년 이후 해외 부재자 투표의 비율이 17~22%에 머문 반면에, 미국 내 우편 투표는 2008년 1.8%에서 2016년엔 5.9%까지 올랐다.
민주당 지지층, 우편투표 선호하는 탓에 트럼프 대통령캠프 긴장 |
우편투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걱정거리는 민주당 지지층이 유독 우편투표를 선호하는 탓이다.
우편투표가 어느 당에 유리한지는 밝혀진 증거는 없으나, 올해 대선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이 많이 참여할 것이 예상돼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이다.
지지율까지 밀리는 상황에서 막판에 우편투표가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지난달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턴트’와 함께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81%가 우편투표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공화당 지지자들(34%)보다 찬성 비율이 크게 높았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우편투표 참여 비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빙의 차이 보일 때, 우편투표가 선거 결과에 큰 변수될 수도 |
다만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처럼 우편투표가 대선 결과를 가를 만큼 수많은 표가 무효처리 될 경우다.
실제로 올해 각 주의 예비 선거에선 다량의 우편투표가 무효 처리됐다. 플로리다와 펜실베이니아 주에선 각각 수만 건의 우편 투표가 도착 날짜를 넘겨서, 또 네바다 주에선 우편 투표의 봉투에 기입된 유권자 서명이 달라 모두 무효처리 됐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컨신 3개 주에서 힐러리 클린턴보다 고작 7만7,000표를 더 얻고도 3개주 선거인단 46표를 독식(獨食)해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우편 투표가 확대되면, 선거 결과를 가를 수도 있을 수많은 표가 ‘무효’ 처리 된다며 트럼프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조직적인 부정 선거 가능성은,역대 자료 분석 1%도 안 넘어 |
워싱턴포스트가 2016년 대선과 2018년 중간선거에서 적발된 우편 투표 부정 건수를 분석한 결과, 모두 1,460만 건의 우편 투표 중에서 이중 투표나 사망자에게 잘못 발송된 투표 용지에 기표하는 등의 부정 사례는 372건에 불과했다. 전체의 0.0025% 수준이다.
1993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유니버설 우편 투표’를 실시한 오레건 주에선 2019년까지 ‘투표 부정’은 82건에 그쳤다.
스탠퍼드대와 미국 여러 대학에서 수년 간의 우편 투표 결과를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선을 우편투표로 치르면 사기극이 벌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과거 연구 결과들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이 지난 20년간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적발된 범죄사례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도 143건 유죄판결로 총투표수의 0.00006%에 그쳤다.
각 주(州)정부가 우편으로 배달된 투표용지를 추적할 수 있고, 투표용지에 적힌 서명과 당국이 보관 중인 문서의 서명을 비교하고 있어 조작은 물론 외국의 개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WP는 현시점의 각주 투표 규정을 고려했을 때 우편투표가 가능한 유권자는 1억8,000여만명으로 전체의 77%가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34개 주와 워싱턴DC가 누구라도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점 등을 반영한 추산치다.
대규모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전달하는 문제 등은 예산이 충분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정부들이 우편투표를 적절히 준비하는 데 40억달러(약 4조7,648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공화당이 예산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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