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를 위한 우리 법원의 절차가 4일 0시부터 시작된다. 실제 압류자산 매각 및 배상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이번 절차를 계기로 한일관계가 다시 한번 요동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지난 6월 포스코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합작사인 PNR에 대해 내린 주식압류 명령의 공시송달 기한이 4일 0시로 다가왔다. 공시송달이란 민사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원 관보 등에 내용을 게재해 소송내용이 상대방에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일주일 후인 11일 0시까지 항고하지 않으면 주식압류 명령은 확정된다.
앞서 포항지원은 2018년 대법원의 배상판결을 근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강제집행 소송에서 PNR 주식 8만1,075주에 대한 압류를 결정했다. 다만 오는 11일 자산압류 명령이 확정돼도 곧바로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 대리인단의 송기호 변호사는 “공시송달 효과 발생과 별도로 매각명령 집행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며 “매각명령이 나와도 공시송달 절차를 다시 하는 등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양국관계에 악재가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며 “외교의 기본은 양보와 타협인데 정부는 감정적인 외교로 대응해왔다. 국익을 고려하되 양국관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금화 위한 50억원 규모 자산평가 착수...최악의 한일관계 대비해야
일본 강제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를 위한 우리 법원의 절차가 임박함에 따라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합의체의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확정판결 이후 강제징용 기업의 배상을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급랭했다. 지난해에는 결국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라는 맞대응이 이어지며 한일 양국의 갈등이 폭발했다. 이후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양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법원의 강제징용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절차 공식화로 갈등이 다시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2일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당장은 큰 영향이 없겠지만 우리가 현금화를 위해 공시송달 다음 조치로 일본 기업을 불러 물건과 주식에 대한 평가를 하는 구체적 작업에 들어가면 기류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은 PNR 외에도 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시강재·대성나찌유압공업 등 여러 건이다. 이들 기업의 압류 대상 자산 총액은 올해 초를 기준으로 50억여원 수준이지만 건건이 한일 양국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폭탄들이다. 만일 이들 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및 매각 결정이 이뤄질 경우 양국관계 악화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자산 매각 및 현금화에 대비해 △관세 인상 △송금 중단 △비자 발급 제한 △금융제재 △일본 내 한국 자산 압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면 일본 정부는 대항조처를 할 방침이라며 관세 인상이나 송금 중단 등 복수의 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법원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국내 사법적 절차로 들어가며 외교적 협상 공간이 좁아졌고 갈수록 한일관계가 어려워 보인다”며 “양국이 최악의 관계에 대응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협상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가운데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만든 ‘문희상안’을 내기도 했으나 소송 원고 대리인단이 이를 반대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올해 1월에는 재야에서 변호사·시민단체·학계 등이 참여하는 ‘민관공동협의체안’을 내놓았지만 일본이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한편 4일 0시 발효되는 PNR 주식 8만1,075주에 대한 압류 결정 공시송달 기한은 PNR이 2018년 대법원에 제기한 재상고에서 원심 확정으로 패소했지만 배상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법원은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낸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PNR이 각 1억원의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들은 1941~1943년 신일본제철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돼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받지 못했다. /손구민·박우인·김기혁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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