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압수수색 시 영장을 발부 받지 않은 채 대상자의 동의만으로 주거지 등을 수색할 때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라고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11일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A씨는 경찰이 수색 목적을 설명하지도 않고 자신의 집을 부당하게 수색했고,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집 내부 사진을 찍는 등 주거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A씨가 사는 오피스텔 건물에서는 22만원 상당의 냄비가 담긴 택배 상자와 70만원 상당의 청소기가 담긴 택배 상자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의 집을 방문해 내부를 살폈다. 폐쇄회로(CC)TV를 돌려보던 중 A씨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A씨는 경찰이 수색 목적을 설명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집을 부당하게 수색했다고 주장했다. 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집 내부 사진을 찍는 등 주거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출동 경찰관은 A씨의 허락을 받아 집 안에 들어갔다고 반박했다. 도난 의심 물품을 찍을 때도 A씨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말했다. 수색 당시 A씨 집 안에서는 도난당한 냄비와 청소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인권위는 “수사기관의 우월적 지위에 의한 강압 수사를 막기 위해 수사기관은 (강제수사가 아닌) 임의수사에서 대상자의 동의 여부를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며 “하지만 경찰은 A씨의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만 할 뿐 동의가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의 책임은 동의 여부 등 임의수사를 입증할 어떠한 증거자료나 정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권위는 그간 이 같은 수사 관행이 이뤄진 점을 고려해 출동 경찰관 개인에게 인사상 책임은 묻지 않고 향후 경찰이 영장 없이 수색할 때 대상자의 동의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등 대책을 세우라고 경찰청에 권고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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