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저희 집에 호랑이띠도 3명이나 되고….”
“항상 겸손한 선수, 성실한 선수, 팬들과 소통도 잘하는 선수, 골퍼이기 이전에 인성이 갖춰진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차분하게 얘기하던 김성현(22)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얘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졌다. 어릴 적부터 변함없는 롤모델이라며 “저랑 어머니·아버지 모두 범띠인 것도 왠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웃었다.
김성현은 지난 9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인 한국프로골프(KPGA)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출전권이 없어 월요예선을 거쳐야 했는데 8명을 뽑는 예선에서 8위로 턱걸이한 뒤 본 대회 우승까지 내달리는 신화를 썼다. 예선을 거친 선수의 우승은 KPGA 투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8세 김주형에 이어 1998년생 김성현도 우승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올해 국내 남자골프는 신예들이 일으키는 바람으로 들썩이고 있다.
11일 전화 인터뷰한 김성현은 “이번 우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CJ컵 출전권을 따낸 게 가장 값지다. 거기 나가면 골프의 또 다른 재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많이들 말씀해주신다”고 했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평균 305야드로 장타 부문 4위에 올랐던 김성현은 자신의 강점을 들려달라는 요청에 드라이버 샷 대신 멘탈과 퍼트를 얘기했다. “드라이버 샷은 엄청난 장타는 아니지만 평균 300야드는 보내고 정확도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면서 “평정심을 유지해 잘 흔들리지 않는 편인 것 같고 클러치 퍼트를 좀 잘 하는 편”이라고 했다. 승부처에서 홀을 외면하지 않는 클러치 퍼트는 전성기 우즈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성현은 “일본 투어에서 뛰면서 작년 한 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국내보다 일본 무대에 먼저 도전해 올해 JGTO 2년 차를 맞았다. “아마추어 시절에 해외 대회 중 처음 나간 게 일본 대회였다. 일본 코스는 깨끗하고 정리가 잘돼있기로 유명한데 제 성향이랑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실력을 닦기 위해 가장 좋은 무대라고 생각해 도전했다”는 설명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고 KPGA 2부 투어(스릭슨 투어)에 참가해 일찌감치 1승도 챙겼다. KPGA 선수권은 생애 두 번째로 출전한 KPGA 정규투어 대회였다. 김성현은 일본 대회 대신 올 시즌 남은 KPGA 투어 6개 대회에 모두 출전할 계획이다. 현재 약 1억8,900만원의 상금순위 1위라 강력한 상금왕 후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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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은 모자 앞면의 ‘골프존’ 로고로도 눈에 띈다. 골프존 로고를 달고 정규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 선수가 됐다.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은 유망주 육성에 관심이 큰 김영찬 골프존뉴딘그룹 회장의 주도로 필드골프 선수들도 후원한다. 김성현은 국가대표 시절이던 2017년에 골프존 레드베터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 골프존과 인연을 맺었다. 대전 골프존 레드베터아카데미와 창원 집 근처 연습장을 오가며 훈련한다는 김성현은 “GDR(골프존 드라이빙 레인지·연습 전용 시스템)은 스탠스를 잡으면 발판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필드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실전 연습에 좋다”며 “코로나19로 인해 길어진 휴식기 때는 물론이고 실전 라운드가 어려운 요즘 같은 장마에도 잘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 스크린골프 유저들처럼 게임 모드도 가끔 즐기는데 “아무리 잘 쳐도 이븐파”라며 멋쩍게 웃었다.
김성현은 캐디로 함께한 아버지 얘기도 했다. “레슨 프로 출신으로 실내연습장도 내셨었어요. 하지만 제가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두 접으시고 오로지 제 뒷바라지만 하세요. 요즘 경기도 안 좋고 캐디 비용도 부담되니 당신이 골프백을 메겠다고 자청하셨는데 결과가 좋아서 남은 대회도 전부 아버지랑 호흡을 맞출 생각입니다.” 아버지 김태우씨는 승률이 무척 좋다. 김성현은 “작년 일본에서는 쭉 현지 일본인 캐디와 함께하다가 2부 투어 대회에서 한 번 아버지께 맡겼는데 그 대회에서 첫 우승을 했다”고 돌아봤다.
김성현은 지난 시즌 PGA 투어 신인왕인 임성재와 한국체대 동기 사이다. 일본 투어와 미국 2부 투어를 거쳐 ‘꿈의 무대’ PGA 투어에 안착한 ‘임성재 모델’을 김성현도 따르려 한다. 그는 “미국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실력도 더 많이 쌓아야 하는데다 이동 거리가 길어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 못 한다고 들었다. 그런 부분도 뒷받침이 돼야 선수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그렇지만 이르면 2년 안에는 PGA 2부 투어에 도전해보려 한다”고 힘줘 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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