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정부 성향의 언론계 거물’ ‘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는 기득권’
유명 패션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주이자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를 세운 지미 라이를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중국 정부에 밉보일 것이 두려워 안정적인 친중 노선을 따르는 다른 재벌들과 달리 올해 72세인 라이는 ‘트러블메이커’를 자처하며 정부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중국 정부가 홍콩 내 반정부활동을 처벌하는 내용의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라이를 체포하자 ‘민주투사’와 같은 그의 일생에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됐다.
한때 자산 1조원을 넘었던 손꼽히는 재력가지만 라이는 ‘흙수저’ 유년시절을 보냈다. 1948년 중국 광둥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듬해 공산화로 집안이 몰락하며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후 13세가 되던 해 라이는 낚싯배를 타고 홍콩으로 밀입국했다. 이후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단돈 8달러(약 9,400원)의 월급을 받았지만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며 실력을 쌓았다. 힘겹게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자금을 마련한 라이는 파산한 의류공장을 인수한 후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의류브랜드 ‘지오다노’를 만들었다. 거침없는 경영 마인드와 뛰어난 사업수완을 자랑하던 그는 지오다노를 연매출 2억달러(약 2,37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성공한 자산가로서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한 라이는 1989년 6·4 톄안먼 사태를 목격한 후 돌연 언론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정부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탱크를 동원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이 같은 실상을 알리는 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계기다. 미디어 업계에 진출해 신문사 ‘빈과일보’와 주간지 ‘넥스트매거진’을 설립했고 중국 지도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톈안먼 시위를 강경 진압한 리펑 총리를 ‘아이큐 제로의 거북이 알의 아들’로 묘사하며 강력히 비난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본토에 있는 지오다노 매장들을 폐쇄하는 보복조치를 취했고 이 여파로 어쩔 수 없이 의류사업을 매각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였다. 2014년 대규모 민주화시위인 ‘우산혁명’과 지난해 송환법반대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홍콩의 자율성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이는 홍콩인권법 제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중투사’의 행보를 이어가는 동안 그는 중국 정부와 친중 성향 인물들로부터의 잇단 위협에 시달렸다. 지난해 9월 자택에 정체불명의 남성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테러를 당했고 2008년에는 자택 밖에 있는 나무에 사제폭탄이 설치돼 불이 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라이는 “시위를 계속할 때 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외압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10일 그가 외국세력과 결탁한 혐의 등으로 체포되자 홍콩에서는 자발적 신문구독 캠페인과 함께 ‘주식 사기’ 운동이 벌어져 넥스트매거진 모회사의 주가가 장중 한때 344%나 오를 만큼 홍콩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2일 새벽 40여시간 만에 풀려난 라이는 의지를 더 불태웠다. 그는 직원들에게 “계속하자. 우리는 홍콩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며 끝까지 신문 운영을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의지 덕분에 중국 관영매체로부터 ‘반체제 4인방’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큼 라이는 홍콩 자유를 위해 싸우는 상징적 인물로 자리 잡았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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