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좇는 정치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달리 ‘분열’의 속성이 강했다. 통합과 포용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진영으로 갈라쳐 뭉치고, 상대를 잔인하게 공격해왔다. 민주주의도 권력을 쟁취하는 형식일 뿐 이런 행태는 결과를 놓고 보면 늘 같았다. 위대한 통치자가 없는 국가에는 결국 국민의 사분오열과 당파, 진영만 남았다.
권력을 쥔 정치는 경제의 영역으로까지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모든 이슈를 다 흡수해서다. 갈라치기, 편 가르기 수법은 전가의 보도나 되는 양 경제의 영역에서도 꺼내는 카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인데도 경제행위를 통한 소득까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배척 대상으로 삼곤 한다. 경제의 정치화인데 갈수록 그 강도는 세졌다. 부동산은 대표적 타깃. 참여정부 때의 트라우마 탓인지 부동산은 그저 ‘정복’의 대상으로만 취급됐다. 정책은 그래서 더 거칠고 과격했다.
심지어 세금을 충실히 내왔던 일부 국민들을 ‘적(敵)’으로 취급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주택자. 이들이 주택을 많이 갖고 있으니 투기세력이고 시장을 교란해 집값을 올려 막대한 ‘불로소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기 목적의 다주택자는 확실하게 때려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3년의 집권 기간, 23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쏟아진 배경 중 하나다. 세금부터 대출 차단, 가격 개입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역시 과하면 넘친다. 집값만 놓고 보면 목적 달성은 실패했다. 집권 3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값(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9억2,000만원으로 52%나 급등했다. 집값은 잡지 못했는데 선량한 국민들은 제법 다쳤다. 서민의 강남 입성은 로또를 맞지 않는 한 불가능하도록 막아버렸다. 분양권을 팔아 마련하곤 했던 내 집 종잣돈도 이제는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무지막지한 규제는 현금부자에게 투자의 천국이 돼버렸다. 1주택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시지가 현실화로 세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전세라고 안정됐을까. 벌집만 건드렸다. 셋 이상이 모이면 너도나도 부동산 얘기를 하는 상황이지만 칭찬보다는 성토가 줄을 이었다. 민심은 그렇게 돌아섰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친구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데 김 의원의 말처럼 이들을 너무 투기세력, 적이라고 몰아붙이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내 집 마련이 꿈이고 소망인 나라에서 지지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국민은 경고를 이미 여러 차례 보냈었다. 집권세력만 읽지 못했다. 갤럽이 3년간 정기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16번 조사에서 15번이나 국민은 ‘부동산 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경고가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깨질 것 같지 않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40%가 무너졌다. 오판과 아집, ‘근자감’이 초래한 결과다.
부동산은 잘못 건들면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다. 역대 정권 모두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3년 5·23대책을 시작으로 해 2006년 11월까지 시장안정책을, 이명박 정부도 2008년 6월부터 2012년 정권 말까지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야만 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10여 차례다. 집값은 살리는 것도, 안정시키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부동산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고차함수다. 더욱이 한국에서 아파트는 욕망의 집합체다. 아파트는 ‘사는 곳’이지만 ‘사는 것’이고 ‘투자의 대상’이다. 부동산을 정치의 영역에서 정교하게 발라내 집중해도 성공이 어려운 이유다. 지지율 40%가 깨진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정치에서 분리해낼까. 사과는 잇따랐지만 반전드라마는 물음표다. 다주택자를 ‘적’으로 한 것이 ‘전략적 미스였다’와 같은 편 가르기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말이다. fusionc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