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권자 여러분, 대통령실과 총리실이 통합됩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아돌프 히틀러 수상에게 위임됩니다. 법률에 근거해 그는 자신을 지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1934년 독일 전역에서 실시한 국민 찬반 투표의 설문 내용이다. 투표의 목적은 절대 권력의 확보. 상징적 국가 원수인 대통령직과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의 권한을 히틀러에게 몰아주자는 국민 투표의 결과는 압도적 찬성. 유권자 4,555만 명의 95.7%가 투표에 참여해 88.1%가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9.9%에 무효 2.0%. 히틀러 총리는 이로써 ‘총통’ 자리에 올랐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은 이 선거에 운명을 걸었다. 돌격대를 동원해 반대파에 대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중의 투표 참여와 찬성 몰표를 다그쳤다. 다만 유대인과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은 일부러 놓아뒀다. 반대표가 집중되도록 유도해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 위해 집단’으로 몰기 위해서다. 의도했던 결과를 얻은 히틀러는 본색을 드러냈다.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1935년 4월 ‘독일인의 피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률’과 ‘국가 시민법’을 만들어 유대인의 공민권을 빼앗았다.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폭주를 막았을까.
정반대다.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극히 일부만 저항했을 뿐, 오히려 히틀러의 광기에 기름을 부었다. 1933년 제정한 수권법으로 모든 정당을 해산시킨 채 나치에 대한 찬반을 묻는 총선에서 독일 국민들은 1936년 98.9%, 1938년 99.01%라는 찬성표를 몰아줬다. 피합병된 오스트리아에서는 찬성표가 99.73%까지 나왔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업고 인류에 끼친 해악은 익히 아는 대로다. 유대인을 학살하고 일본, 이탈리아와 손잡고 지구촌 전체를 전쟁에 빠트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이라는 바이마르 헌법 체제 속에서 히틀러라는 괴물이 나온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절망과 상실감. 피터 드러커는 ‘경제인의 종말’에서 1차대전 패배에 공황과 실업, 초 물가고에 눌린 독일인의 경제적 공포가 히틀러를 잉태하고 폭주시켰다고 봤다. 둘째는 보수우익세력의 오판. 실은 1932년 말 나치는 위기였다. 의석수 감소와 후원금·당비 납부 격감으로 재정난에 봉착했다. 우익 기득권은 위기의 나치를 활용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 히틀러를 수상에 앉혔다. 세 번째는 국민. 표를 몰아준 유권자들도 전쟁과 학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나마 독일은 나은 편이다. 일본처럼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도 있으니.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