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내면엔 비판을 못 참는 권위주의가 폭발한다는 영국 언론의 지적이 나왔다. 600년 전 인물인 세종대왕의 말까지 꺼내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한국 자유주의 정권 내면에 폭발하는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는 자신들을 향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출범 당시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시위의 정신을 기리고자 전보다 더 개방적이고 이견에 관대하며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요즘엔 그 가치가 시들어가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인권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시위의 정신을 기리고자 열려 있고, 이견에 관대하며, 소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며 “그러나 그런 좋은 의도는 시들어버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이 정권에 비판 의견을 낸 이들에 대해 이어가는 각종 법적 조치를 거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공직자와 관련해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이 박근혜 정부 때보다 늘었다”며 특히 지난해 청와대가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칼럼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가 패소한 사례를 들었다. 대통령 순방 일정을 해외 유람으로 묘사한 것이 외교적 결례라는 청와대 주장은 법원 소송전까지 갔지만 결국 청와대가 패소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청와대는 한 보수신문에 실린 칼럼이 문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정 다툼에 나섰다”고 썼다.
이 매체는 또 “정부가 언론에 ‘가짜 뉴스’를 정정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안을 민주당이 최근 발의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 등으로 통일부가 탈북민 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 우파 유튜버는 문재인 정부 전직 고위 관료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수감됐는데 이후 조 전 장관은 불명예를 안았다”고도 꼬집었다. 조 전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보수 유튜버 우종창씨의 예를 든 것이다. 국제언론자유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지난 19일 ‘취재원을 밝히기를 거부해 수감된 한국 언론인의 석방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우씨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자세가 운동권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군사독재에 맞서며 자신들을 지금도 ‘약자’로 여기고 반대 측의 ‘표현의 자유’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정권을 잡았지만 좌파들은 약자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매체에 대해서 ‘특정 정치세력의 입’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비판이 일면 곧바로 ‘우리가 피해자’라는 심리가 발동한다”고 평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정치인들이 옛 말을 인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는 세종대왕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1425년 세종대왕이 한 말을 인용했다. “나는 고결한 위인도 아니고 통치에도 능숙하지 않다. 하늘의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내 결점을 찾고 내가 비판에 응답하게 하라.”라는 말이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4일 페이스북에 이 보도를 번역한 국내 기사를 두고 “외신에서도 뒤늦게 리버럴을 자처하는 정권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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