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서독월드컵 우승 멤버인 제프 마이어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올리버 칸, 2006년 독일월드컵의 옌스 레만까지. 독일 축구 대표팀 골문 앞에는 늘 단단한 벽이 있었다.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온 이 ‘수호신 계보’의 마지막 칸에는 마누엘 노이어(34)의 이름이 쓰여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노이어는 2014년 브라질·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주전 골키퍼 장갑을 꼈다. 한국 축구 팬들에게는 러시아월드컵 당시 경기 막판 골문을 비우고 나갔다가 손흥민에게 쐐기골을 내주는 장면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 후로도 노이어의 명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24일(한국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의 이스타디우 다 루스에서 열린 파리 생제르맹(PSG)과의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주장 노이어는 후반 14분 터진 킹슬리 코망의 헤딩 결승골을 지켜내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대표팀 대선배들인 마이어·칸처럼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고 빅이어(챔스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2012~2013시즌에 이어 두 번째 빅이어 수집이다. 영국 기브미스포츠는 페널티 에어리어 내 선방 3회는 물론 50회 터치와 패스 성공 30회, 롱 볼 연결 8회로 경기 흐름에도 관여한 노이어를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꼽으며 “압도적인 마스터클래스”라고 평했다.
재계약을 놓고 난항을 거듭하다 지난 5월에야 2023년까지 연장 계약에 사인한 ‘노장’ 노이어는 이날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었다. 전반 18분이 압권이었다. 페널티 지역 내 왼쪽에서 네이마르의 슈팅을 왼 다리로 막아낸 노이어는 공이 골라인을 넘지 않고 다시 네이마르에게 흐르자 몸을 날려 또 왼 다리로 차단했다. 네이마르의 컷백 패스가 노이어의 다리에 걸리지 않았다면 골문 앞의 앙헬 디마리아가 자유롭게 득점할 상황이었다. 후반 25분에는 마르키뇨스와 1대1로 맞선 실점 위기에서 오른발로 슈팅을 막았다. 각을 좁히고 나간 노이어는 상체로는 가까운 쪽 포스트로의 슈팅에 대비하면서 다리를 이용해 먼 쪽 포스트를 노린 슈팅을 걷어냈다. 뮌헨이 막판까지 라인을 끌어올려 강력한 전방 압박 전술을 펼칠 수 있었던 데도 ‘최후방 수비수’ 노이어의 존재감이 결정적이었다. 노이어의 벽에 막힌 PSG는 2016년 4월부터 이어온 챔스 연속골 기록을 34경기에서 마감해야 했다. 노이어는 “우리는 우승을 원했고 우승할 만했다. 코칭 스태프를 포함해 우리 모두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라며 감격해 했다.
경기 후 세계 최고 몸값의 ‘3,000억원 사나이’ 네이마르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2017년 FC바르셀로나에서 이적해 PSG를 창단 첫 챔스 결승에 올려 놓았지만 우승 문턱에서 돌아선 그는 못내 아쉬운 듯 빅이어를 살짝 만진 뒤 퇴장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결승골 주인공 코망은 파리 태생으로 PSG 유스팀과 PSG 1군에 몸담았던 윙어다. 주전 미드필더 이반 페리시치 대신 코망을 선발로 기용한 한지 플리크 감독의 ‘한 수’가 적중한 셈이다.
7년 만에 통산 6번째 챔스 우승에 성공한 뮌헨은 사상 최초로 챔스 전승(11전 11승) 대기록을 썼다. 앞서 정규리그와 독일컵도 제패해 7년 만에 트레블(주요 대회 3관왕)을 이룬 가운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득점왕 트레블’을 달성했다. 분데스리가 34골, 독일컵 6골로 각각 득점왕에 올랐고 챔스에서도 15골로 득점 1위를 차지했다. 팀의 트레블과 득점왕 트레블 석권은 1972년 요한 크라위프(당시 아약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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