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의 파업 지속 결정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어떤 전공의들’은 이날 “비대위의 의견이 무시된 상태에서 일선의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임시전국대표자비상대책회의(이하 대표자회의)에서 졸속 의결해 파업을 밀어붙이게 됐다”며 “비대위 다수의 의견을 건너뛰고 대표자회의를 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선의 전공의들은 범의료계 합의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비공식적으로 유포된 정보 속에서 파업을 강행하자고 주장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일선 전공의들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및 고발조치 등으로 궁지에 몰려 ‘뭉쳐야 한다’는 의식이 과열돼 파업 강행을 밀어붙이는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전날 오후10시께 시작됐던 대표자회의에서 협의 주체를 범의료계 협의체로 위임하는 건에 대한 첫 투표가 부결되고 단체행동 중단 투표도 반대도 과반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은 “대전협 지도부를 따를 수 없다고 판단한 비대위 핵심인물 중 다수는 사퇴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결정으로 국민 건강 위협 상황이 더욱 연장됐고 고발당한 전공의를 포함해 전공의 전체도 위험에 빠졌다. 국시 거부 및 집단휴학에 돌입한 의대생들도 구제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이와관련 대전협은 “졸속 의결과 독단 결정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결 과정과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론에도 불구하고 대전협이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번 ‘의정’ 갈등은 어느 한쪽이 큰 상처를 입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양측의 ‘강대강’ 대립 장기화로 대형병원 진료 차질이 더욱 심화하면서 결국 환자들이 모든 피해를 떠안을 형편이다.
대전협은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전문의 자격시험과 인턴시험 역시 정부가 주요 정책을 철회하기 전까지 거부할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는 정상 근무가 아닌 봉사활동 형태로 참여한다. 또 31일 희망자들에 한해 각 수련병원에 정식 사직서를 제출한다. 전공의 파업으로 대형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문의 의료공백이 우려된다는 문제 제기를 의식한 듯 “전공의는 필수인력이 아닌 수련과정의 의사”라며 병원에 책임을 돌렸다.
의대생들 역시 국가시험 거부와 동맹휴학 강행 방침을 밝혔다. 의대생들을 대표하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이날 대표자회의를 열고 집단행동을 이어가기로 의결했다. 의대협은 국가고시 응시 회원 3,036명 중 93.3%인 2,832명이 원서 접수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들 마지막 학년을 제외한 전국 의대생 1만5,542명 중 91%인 1만4,090명은 휴학계를 제출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을 예고대로 9월1일부터 10월27일까지 시행하기로 했지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국시 거부가 현실화하면 내년 2,800여명의 신규 의사가 탄생하지 않는 셈이어서 국가 의료자원 정책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루 전만 해도 전공의들이 파업을 거둘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제기됐다. 대전협과 의학교육·수련병원 협의체는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을 원점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한다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정부가 합의 당사자로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애초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 국·사립대병원장과 전국 의과대학, 의학한림원 등 의료계 원로, 전공의, 의대생이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28일에는 대전협이 한정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만나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관련 법안 추진을 중단하고 향후 의협과 대전협 등이 포함된 국회 내 협의기구를 설치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한다”는 약속까지 끌어냈다. 복지위는 여야 합의 없이는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전공의로서는 국회와 정부·병원으로부터 정부 정책 추진 중단 약속을 받아내고 여야 합의라는 새로운 무기까지 손에 넣은 만큼 한발 물러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결론은 파업 강행이었다.
이제 정부가 더 내놓을 카드는 ‘정책 철회와 원점 재검토’로 사실상 백기 투항이나 다름없어 ‘의정 갈등’은 끝장을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28일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은 의사 10명을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추가로 358명의 전공의·전임의에게 개별복귀명령을 내렸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무릎을 꿇은 정부 혹은 대규모 의사 처벌의 비극적 결말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피해는 결국 환자 몫이다. 서울대병원 내과는 외래진료 축소를 공식화했고 서울성모병원도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술과 진료 연기의 피해는 환자들이 감수해야 한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대전협 비대위원장에 모든 결정을 위임한 앞으로 일주일이 곧 마지막 협상 시한을 뜻한다”며 “양측이 주고받을 게 거의 없어 결과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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