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현의 노래가 고즈넉한 한옥에 내려앉았다. 햇살 머금은 처마와 툇마루를 등진 채 두 눈을 감은 연주자가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활을 움직인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과 흩날리는 연주자의 쪽빛 도포, 유유히 움직이는 구름… 눈과 귀를 사로잡는 미장센과 음악은 고스란히 고화질 영상으로 기록됐다.
지난 17일 마포 광흥당에서 진행된 첼리스트 양성원의 바흐 무반주 첼로곡 모음곡 1·3번 연주 영상 촬영 현장. 공민왕의 사당제를 지내온 한옥이 전에 없던 클래식 공연 무대로 탈바꿈했다. 이날 연주는 마포문화재단의 ‘마포M클래식축제-마포6경’ 콘텐츠 제작을 위해 진행됐다. 대면 공연이 어려운 상황에서 마포의 명소를 배경으로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의 연주 영상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난지천공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 홍대거리, 마포아트센터 등에서 ‘음악을 더 돋보이게 할 영상’을 담아낸다. 연주자와 악기의 이미지를 고려해 장소를 선정한다는 재단 측은 양성원이 연주하는 첼로의 나무 질감이 광흥당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전날 스튜디오 녹음에 이어 이날 현장에서는 음원에 맞춰 현장 연주를 하고 영상을 찍었다. 촬영은 조명이나 외부 소리를 통제할 수 없는 실외라는 점에서 챙겨야 할 게 많다. 햇빛 역시 고려해야 할 변수다. 재단 관계자는 “광흥당이 그림자에 취약한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해 촬영 전 시간대별 그림자 위치를 미리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선율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영상을 위해 양쪽을 모두 이해하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안준하가 영상 감독을 맡았다.
연주자에게도 색다른 경험이다. 양성원은 “악기 소리는 잔향을 바탕으로 하기에 어디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타이밍(박자)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야외인 광흥당에서 연주했을 때와 녹음실에서 연주했을 때가 달라 박자를 맞추는 데 집중했는데 반영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익숙치 않은 방식의 연주지만, 코로나 사태로 줄줄이 취소된 무대의 아쉬움을 달랠 감사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의 혼을 담은 곡을 한국의 혼을 담은 장소에서 연주한다는 게 감동적”이라며 “역사를 간직한 뜻깊은 장소에서 300년 전부터 불멸의 명곡으로 자리 잡은 곡이 연주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는 게 바로 21세기”라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마포 명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최정상 연주자들의 무대 영상은 내달 6일부터 네이버TV와 유튜브를 통해 순차적으로 무료 공개된다. 광흥당과 어우러진 양성원의 연주 영상은 15일 공개된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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