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베트남에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A씨가 검거되며 디지털교도소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2기 운영자가 사이트 운영을 이어가면서 디지털교도소를 둘러싼 신상 공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사 당국이 2기 운영자 검거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며 주소를 바꿔 벌써 세번째 사이트를 개설했다.
방심위는 지난달 28일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디지털교도소 도메인에 대한 접속 차단을 의결해 통신망 사업자들에 관련 공문을 발송했다. 이튿날 오전까지 해당 도메인에 대한 접속 차단이 이뤄졌지만, 그로부터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새 도메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심위는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운영자가 잡히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심위의 한 관계자는 “디지털교도소에 대해 중점적인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며 사이트가 개설될 경우 최대한 신속히 안건을 올려 접속 차단을 의결할 것”이라면서도 “방심위는 유통되는 정보를 사후에 심의하는 역할을 하므로 확인 시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국과 운영자가 개설과 차단을 반복하는 가운데 무고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현역 MMA(mixed martial arts) 선수 김도윤 씨는 최근 부산 연제경찰서에 A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밀양 성폭행 사건’ 관련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현재 디지털교도소 측은 오류를 시인해 현재는 관련 게시글을 내린 상태다.
앞서 채정호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올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폭언·협박성 연락을 받아야 했다. 채 교수는 결국 디지털교도소 측을 경찰에 고소했고 휴대전화를 경찰에 제출해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경찰은 현재 채 교수가 사용하는 휴대전화에서 디지털교도소가 게재한 대화 내역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화에 나온 말투도 채 교수가 작성한 약 10만건의 다른 메시지에 드러난 말투와 확연히 다르다고 판단했다.
디지털교도소뿐만 아니라 텔레그램 등 SNS에서도 무분별한 신상공개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텔레그램 채널 ‘주홍글씨’가 대표적이다. 이 채널의 운영자 송모씨 역시 앞서 경찰에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지만 다른 운영진들이 여전히 채널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 채널에는 재판 중인 성 범죄 피고인, 이른바 ‘지인능욕’ 범죄를 저질렀다고 추정되는 이들 등의 얼굴, 이름, 반성문 등이 많게는 하루에 수건씩 공개되고 있다.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무절제한 신상 공개는 현행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법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교도소나 주홍글씨나 모두 지나친 사적 제재라고 본다”며 “법이 탄생한 것도 이러한 사적 제재나 보복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다. 법의 존재 근거에 비춰볼 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신상 공개 행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2기 디저털교도소 운영자는 보안성이 높은 SNS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제보를 요청하고 있으며 접속 차단에 대비해 새 주소를 공지하는 계정까지 따로 운영하고 있다. 주홍글씨의 운영진들 역시 지난달 26일 “주홍글씨 신상공개기간, 텔레그램 망할 때까지. 운영자가 체포되더라도 채널을 없애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를 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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