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여행을 떠났다는 논란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내로남불을 일삼는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조차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오는 7일 시작하는 국정감사를 코앞에 둔 시점에 강 장관의 남편 해외여행 문제가 쟁점화할 경우 강 장관의 거취 문제로까지 사안이 번질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외교부에 따르면 강 장관은 이날 실·국장들과의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들께서 해외여행 등 외부활동을 자제하시는 가운데 이러한 일이 있어 경위를 떠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강 장관은 회의 이후 외교부 청사를 떠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 “(남편이) 워낙 오래 계획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간 것이라서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어 “여행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설득도 했다”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본인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본인이 결정해서 떠났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3일 요트 구매와 여행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교수는 공항에서 여행 목적을 묻는 한 방송사 취재진에 “그냥 자유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했다는 지적에는 “코로나가 하루 이틀 안에 없어질 게 아니지 않느냐”며 “맨날 집에서 그냥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 교수의 이번 미국행이 논란이 된 것은 외교부가 3월23일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별여행주의보는 해외여행 자체를 금지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것을 권고한다. 여행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 전체 방역을 위한 조치다.
특히 강 장관의 남편은 2월에도 정부가 ‘베트남 여행 최소화’ 권고를 내놓은 가운데 호찌민 지역을 관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여러 사람이 몰리는 대표 관광 코스인 전쟁박물관과 호찌민시 박물관 등도 찾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교수 방문 기간에 우리 정부가 베트남에 여행 최소화 조치를 권고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베트남은 1월23일 첫 감염자가 발생한 이래 꾸준히 확진자가 늘고 있는 추세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월 초 ‘중국 외 지역 내 전파 확인 또는 추정 사례’가 보고된 국가로 싱가포르·한국·일본·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미국·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아랍에미리트 등 12개국을 지목했다. 정부는 이에 11일 중국과 교류가 많은 싱가포르·일본·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대만 등 6곳에 대해 우선적으로 해외여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했다. 이 교수가 호찌민에서 각종 박물관을 찾았다고 밝힌 시점은 이 직후인 12일(현지시간) 오전이었다.
그는 베트남을 다녀온 이틀 뒤 해외발 감염에 따른 대구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카리브해로 여행을 떠났다. 6월에는 그리스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코로나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죽어 나가는데 고관대작 가족은 여행에 요트까지 챙기며 욜로를 즐기는 그들만의 추석, 그들만의 천국”이라며 “국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며 자신들은 이율배반적인 내로남불을 일삼는 문재인 정부의 고급스러운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강경화 장관 가족 논란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 돌봄 취약계층 현장 간담회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강 장관 남편 문제에 대해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고위공직자, 그것도 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외무부 장관의 가족이 한 행위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행위”라면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거라고 보고 있다”고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신영대 대변인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부적절한 처사임이 분명하다”며 “코로나19로 명절 귀성길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국민께 국무위원의 배우자로 인해 실망을 안겨 드린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송구스럽다”는 유감 표명만으로는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감을 앞두고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게 되면 강 장관의 거취 문제로까지 사안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더 낮은 자세의 사과로 사태 확산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한 중진 의원은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국민의 분노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환·김혜린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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