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의 한 진공청소기 매장에서 일하는 애덤 폭스는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주정부의 셧다운(폐쇄)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리 크로프트와 케일럽 프랭크스 등 5명이 더 모였다.
이들은 200명을 모아 미시간 주의회를 습격하고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를 납치하기로 했다. 8월과 9월에는 휘트머 주지사의 별장을 몰래 염탐했고 사격 훈련과 폭발물 제작 연습을 했다. 대선 전에 주지사를 납치해 위스콘신주로 끌고 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민주당 소속인 휘트머 주지사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자택격리와 영업제한 같은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하면서 극우단체의 표적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들의 계획은 불발됐다. 연방수사국(FBI)이 7일 폭스를 포함한 6명의 주지사 납치 기도범들을 체포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준 민병대 ‘울버린 워치맨’ 소속 7명도 내전을 일으킬 목적으로 경찰관을 살해하고 주요 시설을 공격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다음달 3일 대선을 앞두고 미국 사회가 양극단으로 쪼개지면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좌파와 우파가 정면 충돌한 데 이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미 전역의 시위 사태를 불러왔는데 이번에는 정치와 이념 문제를 납치와 살해로 해결하려는 시도까지 벌어진 것이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는 사기라며 대선 불복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 이대로라면 대선 이후에도 미국의 분열상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내 반정부·극우단체들이 코로나19 이후 다시 결집하면서 사회 갈등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NYT는 “2020년은 이들 단체가 온라인에서 거리로 이동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들은 주정부가 코로나19에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5월 플로이드 사망 뒤 일부 시위가 방화와 약탈로 변질하자 내 집과 상점을 지키겠다며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미시간주만 해도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들이 한때 활동한 미시간 민병대를 포함해 전통적으로 반정부 무장단체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4월에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휘트머 주지사의 행정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주의회 의사당에 모였는데 이들 중 일부는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을 해방하라!”며 시위대를 독려했다. 사실상 폭력을 조장한 셈이다. 휘트머 주지사는 “지난주 TV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주 민병대 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극우단체를 비난하는 것을 거부했다”며 “극단주의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외침으로 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 극우단체에 대해 “뒤로 물러서서 대기하라”고만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선거를 전후해 폭력적인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최근 국토안보부는 “반정부 단체와 극단주의자들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셧다운에 대한 보복을 시도할 수 있다”며 “투표소나 유권자 등록행사가 잠재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편투표로 인해 선거결과 확정이 지연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이 더해지면 혼란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체감실업률이 12.8%에 달하고 경기회복 속도가 갈수록 느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사회의 분열과 대립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미시간주에서 변호사 일을 하는 매슈 슈나이더는 “우리 모두는 정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의견 불일치가 폭력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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