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에서 힘을 발휘하던 ‘정치 팬덤’이 장내로 들어오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정치인의 ‘팬심’이 ‘협상파는 소외시키고 강경파만 살아남는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팬덤으로 지칭되는 ‘문파(文派·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층)’다. 문파를 중심으로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최고위원 경선 막바지에 ‘118운동’이 시작됐다. 당 대표로는 기호 1번 이낙연 후보를, 최고위원으로는 기호 1번 신동근 후보와 8번 김종민 후보를 찍자는 캠페인 그대로 실제 결과가 나왔다. ‘팬덤’이 여당 지도부를 결정 짓는 순간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문파’는 실체와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지역 대표 등 조직이 있었지만 이들은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일부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들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공유할 뿐 구체적인 개인의 면면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 조직의 중심축을 이루며 당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2015년 온라인 당원모집이 결정적인 계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방문 또는 우편·팩스로만 낼 수 있었던 입당 원서를 온라인으로 받기 시작한 게 이 시기 즈음부터다. 특히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과정에서 호남세력이 떨어져 나갔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공백을 메우며 ‘문파’가 대거 민주당에 들어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6월 당시 추미애 대표가 2018년 지방선거 공천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를 50% 반영하겠다고 결정하고 ‘100만 권리당원 운동’을 펴면서 당원 모집 경쟁은 더욱 불붙었다. 2017년 6월 24만명이던 민주당 권리당원은 6개월 만에 15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의힘도 지난해 초 비슷한 일을 겪었다. 2월 전당대회에서 투표권 행사를 위해 전년도 하반기 이후부터 책임당원 가입 열풍이 불었다. 일부 보수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자유한국당에 당원으로 가입해 애국세력을 대표로 뽑자” “박사모나 태극기 드신 분들은 오래전부터 자유한국당 당원이었다” “자유한국당 책임당원이 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실제 해당 시기 자유한국당 당원은 1만명 가까이 증가했다. 태극기로 지칭되는 이들 팬덤은 한국당 전당대회 기간 전국 합동연설회마다 찾아가 세를 과시했다. 일각에서는 전대 이후 극렬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과잉 증폭되면서 지난 총선의 참패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 전문가들은 팬덤의 긍정적인 영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과잉 대표성을 경계하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당의 문파나 국민의힘 태극기 세력이 실제 숫자로는 많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게 됐다”며 “특히 정당을 압박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 효능감이 생겨 더욱 과잉 대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참여 욕구와 능력 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과도하게 진영화되고 영향력이 비대해진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물론 장외에서 특정 정치인에 대해 말 그대로의 ‘팬클럽’ 활동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문파 역시 팬클럽에 따라 정당 가입보다는 시민사회로서의 목소리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파에 정통한 관계자는 “시민사회 수준으로 활발한 자원봉사를 추구하는 팬클럽과 정당에 가입해 일종의 당의 하부조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의 이른바 ‘짤’이 온라인상에서 유행했다. 황 전 대표가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하자 SNS에 삭발 모습을 합성한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지지자들은 영화 ‘터미네이터’ 포스터에 황 전 대표를 합성했고 황 전 대표의 얼굴에 수염과 구레나룻을 넣어 야성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정당 집회에 동원력을 과시하는 것과 다른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정치의 고질이었던 자발적인 정치 참여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정치인이나 정당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동원’된 이들이었다. 과거 후보자 합동 연설회 때 무더기로 유세장에 입장해 특정 후보의 연설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왔던 그 ‘지지자들’은 모두 일당을 받고 고용된 사람이었다. 동원에 의한 정치는 돈 선거 문제로 이어졌고 돈 선거는 또 다른 정치 부패와 연계됐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정치 정보의 소비자였던 개별 시민이 주도적으로 정치 활동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됐다”며 “정치 결집과 정보 형성의 주체가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팬덤’이 정당을 집어삼키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신 교수는 “시민 사회의 의식이 높고 제도 정치가 강한 유럽의 경우 검증된 정당을 놔두고 비공식적 정치세력이 부각되는 양상이 미국과 한국에 비해 현저하게 약하다”며 “유럽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당 제도가 촘촘해 시민의 의견수렴이 활발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정당 신뢰성이 낮고 사회참여를 위한 단체도 마땅치 않다 보니 인터넷과 전화, SNS를 통해 온라인상으로 강한 의견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열성 지지층을 당원으로 유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를 다원화·다층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당의 권력을 분산시켜 협상 가능성과 권력 집중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종호·김인엽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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