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 새벽, 명성황후의 거처가 있는 경복궁으로 일본인들이 난입했다.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조선 주재 일본공사가 사주한 낭인들에 의해 고종 황후의 비 명성황후가 시해됐다. 목격자가 있었다. 두 명의 외국인이 경복궁 당직관으로서 새벽 4시쯤부터 건청궁 곤녕합에서 현장을 목격했고, 그들 중 하나인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사바틴의 본명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 1883년에 인천해관 직원으로 조선에 입국해, 1904년 조선을 떠날 때까지 제물포항의 부두를 축조하고 조선의 궁궐 건축물과 정동 일대 근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를 맡았던 인물이다.
사바틴은 경복궁 내 건청군 장안당 뒤편에 관문각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 1894년 청일전쟁 직전에 일본의 경복궁 침입사건을 겪은 뒤로 불안에 시달리던 고종이 그해 9월부터 미국인 윌리엄 맥엔트리 다이 대령을 경복궁 시위대장으로, 사바틴은 부대장으로 나란히 기용했다. 외국인들이라 일본인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고종의 명으로 사바틴은 1주일 중 4일은 저녁에 출근해 해 뜬 후 퇴근했으니, 명성황후 시해의 극악한 사건까지 목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바틴의 활동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문화재청이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기획한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 전시가 19일부터 온라인으로, 20일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개막한다.
러시아 출신의 사바틴은 23살에 인천해관 직원으로 조선에 입국했다. 조러수호통상조약이 1884년 7월에 체결됐으니 조선에 일찍이 진출한 편이다. 근대 건축물을 상당수 지었고, 아관파천과 관련된 러시아공사관 건축에도 참여했다.
전시의 시작은 을미사변의 목격자 사바틴의 기록을 공개한다. 그가 그린 경복궁 내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시해 상황에 대한 사바틴의 증언서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전시는 사바틴의 활동을 펼쳐 보인다. 특히 러시아 공사관 건립과 관련해 예산상의 이유로 최초 설계안은 실현되지 못했고, 이후 사바틴이 예산과 설계를 수정해 공사를 완료하기까지의 전모가 공개된다. 당시 기축통화였던 멕시코 달러로 계산된 견적서, 준공이 실현되지 못한 대한제국 황제 사저, 공사관 공사 대금을 요청하는 사바틴의 청원서 등 우여곡절을 확인할 수 있다. 사바틴은 축조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물포구락부, 독립문, 중명전, 정관헌, 손탁호텔 등 건물의 사진들과 모형도 전시됐다. 각 건물을 주인공으로 한 기념엽서로 제작됐는데, 엽서의 바코드를 전시장 기기에 넣으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사진을 영상으로 볼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11월11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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