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이 연이은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태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가운데 의료계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사망한 인천 고교생의 경우 백신과 사망 간에 연관성이 없다는 부검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다. 다른 사례에 대해서도 정부는 역학조사와 부검 등을 통해 인과관계를 파악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방역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신뢰인 만큼 방역당국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는 원인 파악에 나서고 관련 정보도 빠르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신종플루 백신 개발자인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의 주장을 인용해 “독감바이러스를 유정란에 넣어 배양할 때 톡신(독성물질)이나 균이 기준치 이상 존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하는 쇼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 백신을 접종하고 나면 ‘길랭-바레 증후군’이나 ‘아나필락시스 쇼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때 유정란의 톡신이나 균이 자극 또는 선행 요인으로 접종자의 자가면역계에 영향을 미쳐 몸의 정상조직을 공격하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 의원은 “백신의 경우 톡신이 기준치 이하이면서 무균 상태인 청정란으로 유정란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900만도즈라는 대량의 정부 조달 물량을 급히 제조하면서 관리 부실로 균이나 톡신이 기준치를 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4가 독감백신을 처음으로 무료접종했다는 점에서 새로 추가된 항체가 일부 고령자들에게 민감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3가 백신은 2종류의 A형 바이러스와 1종류의 B형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고 4가 백신에는 B형 바이러스 1종류가 더 포함돼 있다. 지난해까지 3가 백신을 무료접종했지만 올해는 트윈데믹을 우려해 4가 백신으로 무료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은 3가 백신에 비해 4가 백신을 접종했을 때 전신적 반응, 두통, 근육통, 피로 등 경증의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더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항원이 늘어나면서 (지난해까지와 달리) 항원·항체반응에 따른 알레르기나 과민반응이 조금 더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4가 백신으로 전환한 후 단기간에 사망자가 속출한 만큼 4가 백신의 알레르기·아나필락시스·과민반응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상엽 감염내과 전문의도 “드물지만 계란을 먹고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사람의 경우 유정란을 이용해 제조한 독감백신을 접종한 후 심한 알레르기·아나필락시스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며 “이런 분들은 세포배양 방식으로 제조한 백신을 접종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백신 업계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내의 한 백신 제조업체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4가 백신을 유료로 접종해왔지만 이번처럼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없었다”며 “현재 사망자들이 접종한 백신 제조사와 로트번호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백신의 문제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지만 방역당국은 여전히 명확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망자들의 사망원인은 여전히 부검을 통해 조사 중인데도 “사망과 백신 간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백신 책임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 종합감사에서 “동일한 백신을 맞은 대상자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고 의무기록 조사나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찾고 인과관계를 검토해야 하며 부검(완료)까지는 2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의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대해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상온 노출, 백색입자 발견 등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데 빠르고 투명한 정보 공개라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방역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인 만큼 최대한 사망자의 기저질환 등을 포함해 백신 생산 및 유통 등 모든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혜·임웅재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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