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그 어떤 것도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과 친밀함을 대체할 수 없다."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아빠의 육아가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 아빠들이 씨앗이 되자." -개그맨 이정수-
지난 20일 저녁 유튜브로 생중계 된 '스웨덴 토크(SwedenTalk)'에서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와 방송인 이정수 씨가 자신들의 육아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현정 스웨덴 대사관 공공외교공보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방송의 주제는 '아빠의 육아 휴직과 자녀 양육'. 할그렌 대사가 아빠들의 육아 휴직 제도가 가장 잘 정착된 나라인 스웨덴의 사례를 소개했다면 이정수 씨는 한국 아빠들의 척박한 육아 환경을 유머러스하게 꼬집으면서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를 독려했다. 40분 남짓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녀의 성장에 아빠의 육아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의미 시간이었다. 영상을 미쳐 챙겨 보지 못한 부모들을 위해 라이프점프가 핵심 내용을 간추려봤다.
# '라떼파파(latte papa)'을 아시나요
스웨덴은 남성들의 육아 휴직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나라다. 1974년 출산휴가를 성중립적인 부모 휴가로 대체한 최초의 국가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 주로 엄마가 무모 휴가를 쓰다보니 1995년부터는 아빠가 쓰지 않으면 아예 소멸되는 '아빠의 달(총 30일)' 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빠의 달은 현재 90일로 늘어났다. 스웨덴에서는 자녀 한 명당 총 480일의 유급 부모 휴가가 주어지는데 이 중 아빠가 최소 90일을 써야 한다. '라떼파파'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라테파파는 커피를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 말로 남녀 공동 육아 문화가 자리잡은 스웨덴에서 유래했다.
물론 스웨덴도 남성 육아 휴직이 완벽하게 정착된 것은 아니다. 스웨덴 아빠들의 30% 정도만이 '아빠의 달'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육아 휴직 제도가 유명무실한 우리나라의 아빠들이 봤을 땐 부러울 따름이다.
# 세 자녀, 세 번의 육아 휴직...스웨덴 대사는 라떼파파
할그렌 대사는 아내 요한나 사이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요한나는 5년의 기간에 걸쳐 아이를 각각 출산했는데, 할그렌 대사는 그때마다 아빠 육아휴직을 냈다. 그는 "돌이켜보면 (육아휴직을 냈던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자 정말 큰 도전이었다"며 "내 삶의 그 어떤 것들도 그 당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과 그로 인해 형성된 아이들과의 친밀함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육아 휴직하면서 시작한 가사일 분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할그렌 대사는 "집안일이 정말 많다는 것을 육아휴직을 하면서 깨달았다"면서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부터 요리, 빨래, 청소 등을 모두 도맡아 했고, 현재에도 아내와 모든 가사 일을 나눠서 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 아빠들의 육아는 스웨덴 경제에도 도움
스웨덴이 국가가 나서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건 또다른 목적이 있다. 육아를 함께 하는 건 성평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경제와도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할그렌 대사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스웨덴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며 "남성 육아휴직을 통해 (일 할 수 있는) 여성 등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세금을 내야 질 높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육아를 분담해 (엄마들이) 직장에서 경력을 유지하면 가정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며 "육아의 책임을 나누면 평등한 노동시장 참여와 행복한 가정 경제가 보장된다"고 덧붙였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한국도 법으로 남성 육아휴직이 보장돼 있지만 사회 통념과 기업 문화 상 눈치가 보인다. 일종의 편견이다. 스웨덴은 이런 문제가 없을까. 할그렌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십년의 세월 동안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 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스웨덴에도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긴 한다. 그럴수록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고용주와 상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실제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 대체 인력은 미리 계획하기 때문에 업무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 척박한 한국 육아 환경, 아빠의 육아 참여를 응원해주세요
개그맨 이정수 씨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핫'한 아빠다. 2000년대 중반 개그콘서트에서 "내가 누구게, 이정수야.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일명 '우격다짐' 개그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지금은 '전업주부 아빠', '육아 전문가', '사랑꾼'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이 씨는 7살인 딸 리예와 함께한 시간들을 책으로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날 한국 아빠를 대표해 '스웨덴토크'에 출연한 이 씨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면서 엄마들도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에서 육아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엄마잖아요. 일종의 기득권이죠.(웃음) 육아하는 아빠 입장에서 볼때 그 틈을 열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요. 육아하는 아빠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기 위해선 엄마들의 적극적인 행동 방식도 필요해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다른 친구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 '제가 리예 아빠예요' 하잖아요. 그러면 대부분 엄마들이 '아', '예' 하고 빠져요. 애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온 아빠들은 빙빙 돌 수 밖에 없어요. 엄마들의 무리에 끼고 싶은데 안되는 거죠.
엄마들은 산후조리원부터 시작해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공동육아의 바운더리를 많이 만들어 놓았잖아요. (웃음) 백화점 문화센터를 가도 금남의 구역이 있어요. 바로 수유실이죠. 아빠랑 같이 온 아이들은 수유실 못들어가요. 엄마들이 컴플레인을 걸기 때문이죠. 아이 있는 아빠는 들어올 수 있게 해주면 안될가요. 금남의 구역을 없애가야 해요. 육아하는 아빠들이 들어온다면 마음을 열고 끼워주세요."
# 조롱, 희화하는 아빠 육아 문화 정착의 최대 걸림돌
이 씨는 아빠 육아를 별 다르게 바라보는 사회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빠가 처음 육아에 참여하다보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서투른 게 당연한데 이를 유머의 대상으로 삼거나 조롱하지 말자는 것이다. 실제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아빠 육아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우스꽝 스러운 영상들이 많이 나온다.
"육아나 부부관계를 주제로 강의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현장에서 재미를 유도하기 위해 아빠나 남편을 까는 경우가 많아요. '아빠한테 애를 보라고 맡겨놨더니 진짜 애를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라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죠. 이게 말이 되나요. 한동안 아빠가 육아하면 안되는 이유를 재미있게 편집한 영상이 유행한 적도 있어요. 설득이나 설명을 하는 글은 보고 난후 냉정하게 평가하면 되지만 유머는 웃고나면 마음 속에 남기 마련이예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진실이 돼서 내 사고에 영향을 미치죠. 아빠는 육아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말이예요. 아빠는 애를 망치지 않아요. 믿고 자꾸 응원해줘야 합니다. 웃기고 재미있다고 아빠들을 희화화하면 아빠의 육아 문화는 정착하기 어려워요."
같은 줄기에서 이 씨는 아빠들도 남성 육아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 한 톨의 씨앗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그는 "결국 이미지, 편견과 싸워 이기는 게 중요하다"며 "아빠들이 평일 낮시간에 아이를 대동해서 놀이터에 나오면 엄마들이 속으로 '이 아빠는 뭔데 이 시간에 애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씨앗을 심어야 숲이 되듯이 아빠들도 이제는 집안일 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아빠 육아가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도록 씨앗을 심는다는 심정으로 육아에 참여하자"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관한 주한 스웨덴 대사관은 우리나라에서도 아빠 육아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지난 5월말부터 7주간 대한민국 아빠 육아생활 사진 공모전을 진행했으며 11월 중에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내년엔 오프라인 순회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박현정 주한 스웨덴 대사관 공공외교공보실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스웨덴의 '라테 파파'처럼 한국에도 더 많은 육아 아빠들이 나오길 바란다"며 "아빠 육아를 키워드로 한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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