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0월 방송을 시작한 폭스뉴스는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세운 24시간 보도전문채널이다. 당시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보수 색채를 표방한 케이블TV 보도채널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언론 재벌인 머독의 대대적 투자와 걸프전 이후 미국 사회에 불어닥친 애국주의 열풍을 등에 업고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급성장했다.
2001년 9·11테러는 폭스뉴스가 입지를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 심장부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당수의 기존 언론들이 미국 행정부와 이슬람 테러조직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거나 “부시의 잘못”이라고 비난하자 미국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폭스뉴스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애국자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역자로 취급하는 등 자극적 보도로 보수층을 결집했다.
호주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인 머독 회장이 추구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미국 국민들이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맞아떨어지면서 폭스뉴스는 2002년부터 MSNBC·ABC·CNN 등 기존 방송사들을 앞질렀다. 그 뒤 18년째 보도채널 중에서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후 더욱 각광을 받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폭스 출신을 대거 중용하면서 ‘공생 관계’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올해 대선을 계기로 이들의 밀월 관계가 틀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그들은 무엇이 그들을 성공하게 했고 무엇이 그들을 거기까지 가게 했는지 잊어버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잊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2016년 대선과 2020년 대선의 가장 큰 차이는 폭스뉴스”라며 책임을 폭스로 돌렸다. 트럼프의 분노에 결정적으로 불을 댕긴 건 개표 직후 보도이다. 폭스뉴스가 미국 주요 언론 중 가장 먼저 공화당 텃밭인 애리조나주의 승자로 조 바이든 당선인을 예측했다. 이를 ‘폭스의 배신’으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디지털 미디어를 설립해 폭스의 온라인 구독자를 빼앗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언론을 주무를 수 있다고 믿고 협박하면서 민주주의를 흔드는 행태가 전 세계에 만연하니 참담할 따름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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