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터는 두 개의 석탑과 주변을 둘러싼 용화산, 남측 연못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올해 1월 이 자리에 문을 연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 터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박물관’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건축물의 높이는 낮아야 했고, 동시에 전시에 필요한 충분한 층고가 확보되는 건물이어야 했다. 그 결과 지하 2층, 지상 1층의 낮고 평평한 국립익산박물관의 디자인이 탄생했다. 이른바 ‘유적 밀착형 박물관’이다.
국립익산박물관 건축 부지는 익산미륵사지 서측 유물전시관을 포함하는 삼각형 모양으로 대지면적 3만 9,695㎡에 이른다. 연면적은 7,500㎡, 전시실 면적 2,100㎡의 규모로 미륵사지와 유물전시관, 미륵사지 관광지와의 유기적인 진·출입동선을 고려해야 하는 종합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터의 경관 보존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됐다.
건축가는 용화산 남쪽 좌우 능선 사이에 자리 잡은 미륵사지터의 공간구조를 박물관에 담아내기로 했다. 전시관 입구에 다다르는 경사로 길을 건축물 중앙에 배치하고 높은 층고를 필요로 하는 전시실 공간과 기능공간을 진입로 좌우에 뒀다. 입구까지 향하는 경사형 진입로는 사찰 일주문에서 착안했다. 일주문을 통과해 마음을 정화하며 진리의 세계에 다다르듯, 관람객들이 진입로를 걸으며 역사의 정수를 마주하기 전 미륵사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 디자인이다. 박물관 내부의 전시를 보고 난 후에는 경사로를 지나 지붕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박물관 북측 지붕 전망대는 미륵사지 전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진입로를 통해 전시를 보고 전망대에서 미륵사지 터를 감상하는 것까지가 관람의 전체 여정인 셈이다. 풍경으로서의 건축을 감상하는 것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내부로 접근하는 과정과 전시 체험, 지붕에 올라 미륵사지 터를 바라보며 과거의 영화로운 미륵사지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과정을 통해 관람자에게 역사의 시간을 발굴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담겼다.
심사위원회는 “기술적 접근과 대안으로 건축을 지면화해 역사적인 대지에서 건축이 지녀야 할 겸손함에 대한 성공적인 선례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지난 1월 문을 연 국립익산박물관은 백제왕도 익산의 대표유적인 왕궁과 제석사지와 쌍릉, 미륵사지 등 국보와 보물 등 11점을 포함한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개관 3일 만에 4만 명이 방문하는 등 지역에서 사랑받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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