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반독점 행위가 적발될 경우 기업 해체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제재 규정이 담긴 법안의 초안을 마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사실상 구글·애플 등 미 IT 기업을 겨냥한 법안으로 이들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부과를 추진 중인 EU가 제재 카드까지 꺼내 들며 고강도 압박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FT에 따르면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거대 IT 기업이 EU 규정을 위반할 경우 사업 매각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디지털시장법’과 ‘디지털서비스법’ 초안을 제안했다.
디지털시장법은 불공정 관행을 금지하고 인수나 합병 계획을 EU 당국에 알리도록 하는 규정 등을 담고 있다. 거대 IT 기업은 비즈니스 사용자로부터 얻은 데이터의 무분별한 사용도 제한된다. 위반할 경우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법 위반 행위가 5년 동안 3번 반복되면 사업 매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디지털서비스법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겨냥하며 해당되는 기업은 기본권 침해와 선거·공중보건 등에 영향을 주기 위한 의도적 시도 등 플랫폼 악용이나 불법 콘텐츠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규제 대상은 EU 경제 지역에서 연간 매출액이 최근 3년간 최소 65억 달러를 기록하고 최소 3개 EU 국가에서 4,500만 명의 이용자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술 기업이다.
EU가 규제 대상 기업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은 미 IT 기업들이다. CNN은 이번 초안에 대해 “아마존·애플·구글·페이스북 등과 같은 미 IT 기업을 통제하려는 EU의 가장 공격적인 입법”이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이번 초안이 통과되면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재 대상에 한국의 삼성전자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FP는 좀 더 강력한 규정 대상이 될 기업은 페이스북·구글·아마존·애플·마이크로소프트·스냅챗 등 미국 업체와 삼성전자,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네덜란드의 부킹닷컴이라고 전했다. 구글은 이날 성명에서 향후 EU 집행위의 제안을 세심하게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이 제안이 소수 기업을 구체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밝혔다.
EU는 유럽의회와 각료 이사회에서 이 초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언제 이런 절차가 진행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EU가 실제로 기술 기업을 해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영국 로펌 클리퍼드챈스의 토머스 빈예 파트너는 FT에 “EU가 미국 기업을 해체하겠다고 위협하며 미국과의 동맹을 깨뜨릴 위험을 무릅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는 기업 해체가 쉽게 일어나도록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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