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직 2개월’ 처분을 집행정지하면서 ‘징계 의결 자체가 무효’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앞서 징계위원회에서 윤 총장 측의 기피 신청을 기각하는 의결에 하자가 있었고, 이에 따라 기피 신청을 받은 위원들이 참여해 내린 징계 의결도 하자가 있어 무효라는 결론이다.
이는 이번 법원 심문 과정에서 처음 등장하고 곧바로 인정된 절차적 하자다. 앞서 윤 총장 측이 공개적으로 지적한 여러 절차적 하자 중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 법원은 이 절차적 하자에 더해 징계 사유에 대한 추가 소명·심리 필요성을 미루어볼 때 본안인 징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윤 총장이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만약 본안에서 법원이 이 절차적 하자에 대해 같은 판단을 내린다면 윤 총장 징계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타가 될 전망이다. 징계위 구성에 잘못이 발생한 경우 그 의결에 대해 징계 사유를 불문하고 무효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피 의결 무효, 징계 의결도 무효"…이유는?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 12부(홍순욱 부장판사)는 전날 윤 총장의 징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신청인(윤 총장) 변호인의 각 기피 신청에 대한 기피 의결은 검사징계법 제17조 제4항의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이라는 의사정족수를 갖추지 못하여 무효”라며 “징계위원회의 징계의결도 징계의결에 참여할 수 없는 기피 신청을 받은 위원들의 참여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서 의사정족수에 미달하여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 판단의 핵심은 지난 10일과 15일 두 차례 열린 징계위 회의에서 진행된 기피 의결 총 7건의 의사정족수가 미달됐다는 데 있다. 법원은 징계위가 기피 의결을 진행하기 위해선 재적위원 7명의 과반수 출석, 즉 4명이 참여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해당 기피 신청 건들에 대해선 각 3명씩만 기피 의결에 참여했기에 의사정족수 4명을 채우지 못해 의결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다.
징계위에선 무슨 일이…기피 의결 재구성
법원의 내린 이 판단의 취지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앞서 징계위에서 기피 의결이 어떤 절차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일 징계위 첫 회의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정한중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 이용구 법무부 차관,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 등 총 6명이 출석했다. 다만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자라는 제척 사유가 있어서 심의에서 빠졌다. 이에 정 교수가 징계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총 5명이서 징계위 심의를 진행했다.
윤 총장 측은 이날 징계위원이 누군지 확인한 뒤 총 7건의 기피 신청을 넣었다. 공통 기피 신청으로 ▲정한중·안진·이용구 ▲정한중·이용구 ▲이용구·심재철 3건, 그리고 개별 기피 신청으로 신 부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 4건을 넣었다.
7건의 기피 의결에 위원 3명씩만 참여
징계위는 ‘3명 공통 기피 신청’부터 의결했다. 결과는 기각. 기피 사유가 사실관계가 틀렸으며 기피 신청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다음은 ‘2명 공통 기피 신청’ 2건에 대한 의결이 이뤄졌다. 이때 기피 신청 대상자는 의결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검사징계법 조항에 따라 2명은 퇴장하고 나머지 3명만 의결에 참여했다. 결과는 역시 모두 기각이었다.
이후 징계위는 개별 기피 신청 4건에 대한 의결에 들어갔다. 첫 순서는 심 국장에 대한 기피 신청 의결이었다. 그런데 심 국장은 징계위에 회피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심 국장의 기피 의결은 이뤄지지 않았고, 심 국장은 이후 기피 의결에서도 빠졌다. 이후 신 부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 징계위원 각각에 대한 기피 의결이 진행됐다. 의결은 각 기피 대상자 1명씩 퇴장한 상태에서 3명이서 의결했다. 3건도 모두 기각됐다.
결과적으로 2명 공통 기피 신청 2건과 개별 기피 신청 3건 등 총 5건의 기피 의결이 3명만 참여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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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 측은 지난 15일 징계위 2차 회의 때도 2건의 기피 신청을 했다. 정 교수와 신 부장에 대해서였다. 각 기피 대상자 1명씩 퇴장한 상태에서 3명이서 의결했고 또다시 기각됐다. 즉 지난 10일 5건과 더하면 총 7건의 기피 의결이 3명만 참여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3명 참여 기피 의결, 의사정족수 미달로 무효"
법원은 이처럼 기피 신청 7건에 대해 재적위원 과반수인 4명에 미달하는 3명이서 의결했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추 장관 측은 의결에 참여하지 않는 기피 신청 대상 위원도 의사정족수에 포함시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대법원이 지난 1991년5월28일 선고한 ‘90다20084’ 판결을 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판결에서 해석 대상으로 삼은 상법 조항은 검사징계법의 기피 조항과 문언이 다르므로 인용이 적절치 않다고 일축했다.
윤 총장의 대리인 이완규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날 심문 과정에서 (기피 의결에 3명씩 참여한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며 “우리는 의사정족수 미달이라고 주장했고 상대방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우리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법원 '기피 의결 무효→징계 의결 무효' 판단
징계위원 전부가 기피 의결의 하자로 징계 의결 참여 자격이 없어 징계 의결의 출석자는 결과적으로 0명이어서 의사정족수 4명에 미달한 상태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절차적 문제는 다 기각…사실상 구사일생
법원이 이같이 징계 의결이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윤 총장 측은 숨통이 트이게 됐다. 이날 법원은 징계위 구성·진행과 관련해 윤 총장 측이 기존에 주장했던 내용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컨대 심 국장이 징계위에서 회피하기 전 다른 징계위원들의 기피 신청에 대한 의결에 참여한 것은 위법하다는 윤 총장의 ‘늑장·꼼수 회피’ 주장은 기존 판례와 배치된다며 일축했다.
징계위가 윤 총장 측에 최종 의견 진술을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회의를 종결시킨 데 대해서도 “최종 의견 진술권이 박탈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예비위원 지명 안하고 진행…패착이었나
추 장관 입장에선 징계위 진행과 의결을 서두르기 위해 빠듯한 인원으로 징계 의결을 했다가 결국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징계위는 이번 징계 과정에서 위원 구성에 대해 사실상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징계위는 위원 한 명이 처음부터 출석하지 않아 6명으로 개회했다. 또 추 장관의 제척, 심 국장의 회피로 총 3명의 빈자리가 발생했으나 예비위원으로 채우지 않고 그냥 진행했다. 그러자 윤 총장 측이 제척·회피한 위원 자리를 채워 7명 출석으로 징계위를 진행하는 게 적법하다며 예비위원으로 채울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징계위는 이번에 문제가 된 기피 신청과 관련한 윤 총장 측의 엄포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 개최 전부터 이 차관과 심 국장 등에 대한 기피 신청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징계위는 해당 위원들을 출석시킨 뒤 윤 총장 측의 기피 신청을 의결에 올려 기각하는 방식으로 정면 돌파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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