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한성백제박물관에 소장된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를 공동 조사하면서부터였다. 박물관에 있던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는 북한 최고의 미술가들이 모여 있다는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벽화의 모습을 생생하게 옮겨놓은 작품들이다. 실제 고분이 아닌 모사도를 조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던진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가볼 수 없기에 연구가 부족한 고구려 고분의 자료들은 이때의 조사를 시작으로 쌓일 수 있었다.
해방 이후 북한은 고구려 고분 발굴과 모사도 제작에 열을 올렸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모사도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더 이전인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됐다. 1912년 강서고분 조사에 참여했던 일본의 도안가 오바 쓰네키치는 벽화의 모사도를 사실적으로 옮겨 그렸고, 독일학자 에카르트는 벽화의 아름다운 문양을 세밀한 스케치로 남겼다. 그들의 그림은 ‘조선고적도보’ ‘조선고분벽화집’에 원색 삽화로 실려 출간됐다. 모사도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이왕가미술관의 대표 전시품으로써 관람객들을 불러 모았다.
출판과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고구려 고분벽화는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의 입선작 가운데 사신도·인물도 등 벽화 문양을 활용한 작품들이 많았다. 근대기 미술가들에게 고구려 고분벽화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올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천상의 문양예술: 고구려 고분벽화’를 발간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발간된 고구려 고분벽화 문양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모은 벽화 자료는 약 270건의 일러스트를 만드는 데 밑바탕이 됐다. 발간과 더불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상품개발실과 협업해 삼족오 문양을 활용한 향초꽂이도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캐릭터화한 연하장을 문화재청 블로그에 공개해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중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문양 도안들이 무궁무진한 콘텐츠로서 재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통문화 유산 연구개발(R&D)의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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