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는 한국 유권자들이 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높은 정치 의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 지지 여부와 별개로 권력 쏠림과 집권 세력의 권위주의 행태가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자연스레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2016년 촛불 시위를 통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데서 보듯이 시민 의식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당장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비교해도 오히려 나은 수준”이라며 “(권력이 과도하게 독주한다고 판단될 경우) 선거와 여론을 통해 민주주의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4월 보궐선거와 내년 3월 치러지는 대선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구현될 수 있을 정도로 정치 지형이 개편될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18대 대선 이후로도 지방선거와 총선 등 주요 선거에서 현 여권은 잇따라 압승을 거뒀지만 실제 유권자 이념 지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메트릭스리서치는 지난해 21대 총선 직후 벌인 조사를 통해 유권자의 이념 성향은 진보 27.9%, 중도 37.2%, 보수 25.8%로 분석했다. 2017년 대선 방송 3사 출구 조사에서 보여준 진보 27.7%, 중도 38.4%, 보수 27.1%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일시적으로 현 야권 세력에 등을 돌렸지만 특정 이념의 정책이 과도하게 쏟아지는 데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이 권력의 균형추를 회복하는 데 손을 들어줄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한국 유권자의 시민 의식 수준은 높다. 1년간 여권이 검찰 개혁을 내세워 특정 인물을 찍어 내려고 하는 등 여러모로 무리한 모습을 보인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4월 보궐선거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이 표로 상당 부분 표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정권 심판론이 실현되려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야당이 먼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대안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최근 여권에서 먼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주장을 제기하는데, 보수의 지도자라면 (여권의 주장을 곧장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들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진실된 사과가 먼저 이뤄지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그래야 국민들이 야당을 믿고 표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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