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오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부터 북한 문제 해법까지 연쇄 파동이 일어난다. 국내는 4·7 보궐선거와 여야 대선 후보 경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시즌에 돌입한다. 대한민국이 안팎으로 중대한 갈림길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 소장은 “미중 패권 다툼 속에서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지 않으면 모든 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북한과 협력하더라도 우리가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지 달라고 다 주면 안 된다”며 상호주의에 입각한 기본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전략에 대해 “아집과 독단에 빠진 정권이 전문가의 의견을 일절 듣지 않으려 하는 게 큰 문제”라며 “결국 ‘문제는 정치다, 바보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새해를 맞아 한국이 외교 안보 분야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전략적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한 해가 될 듯하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이냐는 물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국가연합에 참여할지 말지를 노골적으로 강요당하지는 않겠지만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북 정책의 중점을 계속 평화에 둘 것인지, 북핵 폐기에 더 힘을 쏟을 것인지도 선택의 문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은 문제아’라는 국제적 인식을 어떻게 회피할 것이냐이다. 미국을 선택하지 않으면 중국 편이 되고 남북 협력에 매달리면 비핵화를 포기했다는 인상을 주며 민주 연합 참여를 주저하면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 있으므로 한국은 외교에서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패권 다툼의 양상이 달라질까.
△미중 간 전략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최대 압박으로 누르려는 방식을 삼가고 중국과 경쟁적 공조를 취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연합을 통해 중국을 서서히 옥죄는 방식으로 전환될 개연성이 크다. 또 미국은 대(對) 중국 우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둬 미래 경쟁력과 관련된 첨단 기술에서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한국이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길을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미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이미 선택은 끝난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을 선택했고 중국이 이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중국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첨단 과학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혹시라도 이 분야에서 중국과 손잡고 미국의 코털을 건드리는 실수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을 멀리해야 한다는 뜻인가.
△물론 중국과도 협력은 지속해나가야 한다. 다만 국제법과 국제 규범에 맞게 해야 우리가 중국에 할 말을 할 수 있다. 자유무역체제 준수, 영토 문제에서 실력 행사 불가 등 분명한 원칙 속에서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
-바이든 시대의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거래의 아이템으로 생각하고 돈으로 흥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바이든 당선인은 본래 자유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와 연합체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만큼 한미 동맹 복원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비롯한 한미 동맹의 장애 요인들은 합리적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달라지는 한미 관계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미국이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소집한다면 한국이 대표 주자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가입했으면 한다. 이때 주저한다면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에 회의를 갖게 될 수 있다. 한미 연합 훈련 복원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즉각 재개하고 한미 동맹의 전략 자산을 전개해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를 다시 확보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공짜로 포기한다는 인상을 북한에 줘서는 절대 안 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어떻게 달라질까.
△바이든 당선인은 북한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또 비핵화 추진 방식은 정상 외교를 통한 톱다운 방식보다 전문가의 협상 결과를 도출해 정상 외교로 연결하는 보텀업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대북 정책 기조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한국도 북한 비핵화 의지가 굳건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될 수 있다. 대북 제재 완화나 대북전단 살포 금지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의 요구를 따르는 쪽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방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모양새는 남북 관계에서 우리의 지렛대를 제약할 뿐 아니라 협상 폭을 좁히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남북 통일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엇갈린다.
△양극단의 통일론은 모두 경계 대상이다. 통일은 부담이 되니 하지 말자든지, 통일만 되면 다 좋다는 식의 대박론은 옳지 않다. 어느 순간 갑자기 통일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독일을 봐도 상호 교류와 이질성 해소를 통해 통일이 가능했다. 그런 측면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할 게 아니라 아예 남북의 방송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했어야 했다.
-한일 관계가 중병을 앓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면서 어떻게 한일 간 외교 갈등을 푸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 일본이 한국을 줄곧 자극했는데 강제징용 판결은 보기 드물게 한국이 먼저 일본을 자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판결대로 이행하는 것은 일본이 1965년 한일 협정을 파기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만큼 그 딜레마를 해소하는 방법은 한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는 것뿐이라고 본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이 할 일은 뭔가.
△일본 또한 역사 문제에 대해 진지한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 사실 강제징용 판결도 아베 신조 정부가 사죄와 반성을 거부한 탓이 크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또한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한일 모두에 정치적 해결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한일 간 균열이 계속될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전략적으로 보면 미중 대결의 한복판에 한국과 일본이 놓여 있다. 대륙판과 해양판이 부딪히는 곳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면 국제사회에 ‘한국이 중국 편으로 기울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과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한국을 미국과 일본에서 떼어내 외톨이로 만드는 것이 북한과 중국이 가장 바라는 일인데 그걸 자진해서 안겨준다면 대단한 전략적 실수다. 중국조차 일본에 대한 역사 문제 제기를 자제하고 경제 협력과 정상 외교에 공을 들이는 전략적 외교에 힘을 쏟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 외교’ 전략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반전(反戰) 평화에 집중해왔다. 전쟁을 막겠다는 외교 정책이 평화 환경 조성에 큰 공헌을 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라 할 수 없다. 평화가 무너진다면 힘만 남게 되는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안보를 강화해야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 반전 평화뿐 아니라 비핵화 평화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를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우리 정치가 경제, 외교 안보 등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동력이 돼줘야 하는데 되레 정치가 앞으로 가려는 모든 것들을 막고 있다. 근본적 정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만 옳다는 아집과 독단에 사로잡힌 정권이 전문가의 의견을 일절 듣지 않으려 하는 게 큰 문제다. 심지어 외교 분야에서는 전문가를 편 갈라 한쪽의 말만 듣는데 그러다가 우리나라가 가진 역량의 4분의 1도 못 쓰는 꼴이 됐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복잡다단한 국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일부 견해에 사로잡힌 독단에 빠져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정치는 국민 이익, 국가 이익을 중심에 둬야 한다. 선거에 유리한지 여부를 따지는 정치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정부가 스스로 틀릴 수 있고 정책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도 외교도 잘못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고치는 복원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복원력이 상실된 것 같다. 순혈주의에 사로잡힌 인사도 큰 문제다. 진영 논리에 빠져 자기들만의 성에 갇힌 채 성 밖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일부를 빼고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동북아 격변기에 직면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국가 지도자는 목측력(目測力)을 지녀야 한다. 두루 넓게 보면서 판을 읽을 줄 알고 정확한 결과까지 예측해내는 목측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주변의 얘기를 폭넓게 듣고 종합해내는 능력도 필수적이다. 목측력과 종합력으로 얻어낸 결과를 과단성 있게 펼쳐 실현해내는 결단력도 요구된다. 세 가지 능력을 갖춘 지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외에는 안타깝게도 찾기 어렵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분적 능력을 보여줬을 뿐 직전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그런 능력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1963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청주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조교수를 거쳐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를 지낸 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념적 편견과 관념적 예단을 배격하고 사실에 기반한 통찰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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