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은 아동 학대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동시에 국내 입양 시스템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냈다. 입양 부모에 대한 촘촘한 자격 검증과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어린 생명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민간 기관이 주도하는 입양 시스템을 국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입양 초기 단계부터 공공 개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들은 관련 기관에 입양 신청을 한 뒤 상담과 예비 입양 부모 교육, 가정 조사 등을 받아야 한다. 이후 아동 결연이 이뤄지면 예비 양부모는 보유 재산 수준과 아동 학대, 가정 폭력, 성폭력 등 범죄 경력 유무를 포함한 필수 서류를 가정법원에 제출한 다음 법원의 최종 허가를 받아야 입양이 성사된다. 정인이 역시 이러한 절차에 따라 입양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정인이의 입양 절차를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홀트)는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입양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문제는 현행 국내 입양 시스템으로는 예비 양부모의 자격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홀트가 정인이 입양 과정에서 양부모를 만난 횟수는 입양 신청부터 교육, 상담, 가정 조사 등 일곱 번이었고 이중 예비 입양 부모 교육은 단 하루 8시간 만에 끝났다. 동방사회복지회 관계자는 “여러 차례로 나눠 교육받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입양 부모 대부분이 맞벌이라 하루에 몰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동영상 교육으로 대체되고 있다. 반면 우리와 달리 스웨덴은 3시간 단위로 나눠 7회(21시간)에 걸쳐, 영국은 9회(27시간), 미국은 10회(27~30시간)씩 예비 입양 부모 교육을 진행 중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입양 전 예비 양부모를 교육하고 준비하는 데만 최소 반년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전했다.
양부모의 자격 검증에 있어 필수적인 범죄 전과 여부 조사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입양 기관 지도 점검 결과’에 따르면 동방사회복지회는 지난 2017년 범죄경력회신서에 기재된 성범죄 경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입양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의 ‘가정조사서’를 발급해줬다가 경고 처분을 받았다. 또 대한사회복지회는 입양 신청인의 범죄경력을 조회하지도 않은 채 신청인이 제출한 범죄경력회보서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사실이 다섯 차례나 드러나 주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들 기관을 포함해 입양 기관 5곳이 2015~2019년 30여 건의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대부분 시정, 주의조치 또는 경고에 그쳤다. 예비 양부모의 자격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입양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이현곤 변호사는 “법원은 입양 기관이 제출한 서류를 토대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보충 조사하는 수준”이라며 입양을 최종 허가하는 법원도 입양 기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민간 입양 기관이 주도해온 입양 부모 검증에 국가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입양인연대는 “입양 건수에 따라 수수료 이익을 얻는 민간 기관이 입양 부모의 적격성 평가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센터장은 “입양 시스템 전반을 관리하고 양부모 자격을 검증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 또한 “민간 입양기관에서 입양을 주도하다보니 입양이 어느 기관에서 얼마나 되고 있는지, 사후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나 실태 조사가 전혀 안 되고 있다”며 “공공성이 강화돼야 부족한 부분을 제때 채워 가면서 입양 절차와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 선진국들은 정부나 공공 기관이 입양 절차 전반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독일은 아동청이 입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스웨덴은 지방정부가 입양 부모 자격을 검증한다. 영국도 적격성 심사와 결연은 공공 기관이 도맡는 구조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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