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결과를 보니 기획부동산의 임야 지분 판매는 ‘다단계 취업 사기’가 확실합니다. 기획부동산은 경매나 공매를 배우며 일당 7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쓸모없는 땅을 지인에게 팔게 하고 직원 자신도 사게 했습니다.”
24일 서울경제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73번지 매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본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청계산 이수봉과 국사봉에 걸쳐 있는 금토동 산73번지는 30여 개 기획부동산이 4,856명에게 974억 원어치를 팔아치운 임야다.
직원 아닌 매수자 41%, ‘권유’ 받아 매입
서울경제 조사에 응답한 금토동 산73번지 매수자 중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전화를 받거나 광고를 보고 샀다는 사람은 4%에 불과했다. 직원이 아닌 매수자가 임야 지분을 산 데에는 직원이 지인이라는 이유가 컸다. 일반 매수자 39명 중 ‘직원의 권유’를 받고 샀다는 응답은 41%였다.
설문의 ‘소액 투자 목적’ 문항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로 지인의 권유에 마지못해 샀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매수자 A(68) 씨는 “직원인 지인이 애원해서 결국 샀다”며 “땅을 다시 팔아 달라고 하니 ‘이 시국에 누가 사느냐’고 반문했다”고 말했다.
매수자들의 직업을 물어보니 43%는 무직이었다. ‘기타’를 고른 사람은 23%(12명)였는데 △건설 일용직 △농업 △보험 영업 △기획부동산 △아르바이트 등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절반에 달했다.
취업 소개도 다단계…절반은 ‘일당 줘서’
기획부동산 직원들은 어쩌다 취업하게 된 것일까. 직원으로 일한 14명에게 ‘회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물으니13명이 ‘친구·지인’, 1명이 ‘가족·친척’을 골랐다. 취업 소개 역시 인맥을 통해 다단계로 이뤄진 것이다.
기획부동산에 취업한 이유에 대해 절반은 ‘일당을 줘서’라고 응답했다. 지분 판매 기획부동산은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일하면 일당 7만 원을 지급한다. ‘경·공매를 배우려고’나 ‘판매 수당이 좋아서’라는 응답도 각각 2명이었다. 기획부동산은 경·공매를 가르쳐준다고 홍보하지만 입사하면 지분 판매만 시킨다. 판매 수당은 땅 판매액의 10%를 지급하고 성과에 따라 몇 %를 추가 지급한다. 기획부동산 직원으로 일한 충남 아산시의 B(59) 씨는 “땅을 못 팔면 자신이 사야 한다”며 “내 주위 사람들은 다 빚쟁이”라고 말했다.
'땅 안 가봤다' 87%…지분 10개 산 사람도
매수자 대부분은 땅에 대한 검증에 매우 소홀했다. 지분을 사기 전 현장을 가보았느냐는 질문에는 87%가 가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심지어 55%는 지번도 몰랐다고 밝혔다. 금토동 땅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것을 알았느냐’는 질문에도 53%가 몰랐다고 답했다. 등기부등본을 열람해본 매수자와 기획부동산이 땅을 얼마에 샀는지 안 매수자 역시 각각 6%에 불과했다. 기획부동산은 금토동 땅을 매수가인 3.3㎡당 3만 6,600원의 6.5배 가격에 팔았다.
매수자 대부분은 금토동 땅만 산 게 아니었다. 매수자 3명 중 2명인 67%(35명)가 다른 땅의 지분도 샀다고 답했다. 금토동을 포함해 2개를 구매한 사람이 21%, 3개 17%, 5개 8% 등이었다. 지분 7~10개를 샀다는 사람도 각 1명이었다. 이들 중 총 구매액을 답하지 않은 3명을 제외한 32명의 평균 구매액은 7,425만 원이었다. 구매자 전체의 평균 구매액 2,352만 원과 비교하면 이들은 5,000만여 원을 추가 투자한 것이다. 기획부동산 직원이었던 40대 초반 이지영 씨는 “언니 것까지 하면 지분을 총 1억 7,000만 원어치 샀다”며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직원이 지인이니 항의도 어려워…연락 두절도
대부분 지인을 통해 지분을 매수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어도 환불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C(65) 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전세금이 필요해 환불하려고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추가 투자를 권유했다”며 “더 이야기하며 싸우기도 싫다”고 말했다. 직원이었던 친척에게 항의하자 연락이 두절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직원이었던 이모를 통해 샀다는 광주광역시의 D(56) 씨는 “딸도 사고 시어머니도 샀는데 딸이 땅에 대해 알아보더니 사기당한 것 같다더라”며 “이모에게 서운한 소리를 하며 땅을 팔아달라고 하니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기획부동산 매수자에게 ‘지인·친구’는 가장 위험한 네트워크였다”며 “사기라는 걸 알았을 때 신뢰 관계도 무너지는 이중고를 겪는다”고 말했다.
본지 심층 조사 방법은…매수자 정보 DB화 후 우편 발송
서울경제는 기획부동산에서 지분을 매수한 사람들에 대한 표본조사로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73번지를 선택했다. 기획부동산 30여 곳이 한 지역의 임야를 쪼개 4,800명에게 974억 원어치를 판매한 역대급 사건이기 때문이다. 본지는 지난해 상반기 금토동 산73번지 등기부등본의 매수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 20일에는 매수자 중 961명의 주소지로 우편 발송 업체를 통해 설문 협조 요청 편지를 보냈다. 이후 답신이 온 매수자들에 대해 신원을 확인한 뒤 전화로 심층 설문,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상자는 총 53명(응답률 5.5%)이다. 우편 30통은 반송됐다. 언론이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는 기획부동산 지분 매수자들의 매수 경로와 이유, 소득·자산 등에 대해 심층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 우편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취재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이 온 매수자도 9명 있었다. 이들은 통계 결과의 산출을 위해 조사하지 않았다. 기자에게 다짜고짜 ‘설문을 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편지를 받았다면서도 설문을 하지 않겠다고 불만을 표시하며 항의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들의 카카오톡 이름을 매수자 목록에서 검색해보니 없는 사람이 상당수였다. 이번 조사로 기획부동산의 기망 수법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기획부동산 직원들로 추정된다. 아래는 본지가 보낸 편지 내용./조권형·박진용 기자 buzz@sedaily.com
관련기사
금토동 산73번지 설문 협조 요청 편지
금토동 산73번지 공유지분 구매자분께.
안녕하세요. 서울경제신문 조권형 기자, 박진용 기자입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73번지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있는 주소를 보고 편지 드립니다.
공유 지분 매수 경로와 이유, 향후 처분 계획 등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하기 위함입니다.
저희는 그동안 부동산 업체를 통해 이뤄진 대량 공유 지분 매매와 그 시장에 대한 기사를 써왔습니다.
이번에는 금토동 산73번지에 집중해 기사를 쓰려고 합니다.
금토동 산73번지를 택한 이유는 매매된 공유 지분 토지 중 면적, 가격, 인원수가 최대이기 때문입니다.
약 4,800여 명이 금토동 산73번지의 공유 지분을 매수하셨고, 매매 대금은 총 964억 원입니다.
공유 지분 매매의 규모는 연간 1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누가, 왜, 어떤 경로로 매매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설문으로 매수자분들의 공유 지분 매매 경위와 기대 또는 불안 요소 등 실태를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010-****-****으로 문자나 전화를 남겨주시면, 저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 매수하신 지분 내역을 확인한 뒤 설문을 진행하겠습니다.
설문 문항은 20여 개로 시간은 10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설문 결과는 기사 작성과 학술 연구를 위한 통계 수치 산출 목적으로 이용됩니다. 이름과 연락처 등 개인 정보가 노출되진 않을 것이며, 개별적인 응답 내역 전체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설문에 협조해주시면 공유 지분 매매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고, 정부가 시장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