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지난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던 그해 12월 31일 중국 중부의 후베이성 우한 방역 당국이 하나의 깜작 발표를 내놓았다. 우한에서 원인불명 폐렴이 번지고 있고 이미 2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과거 중국을 휩쓸었던 사스 공포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중요 사건이었지만 우한 외 대부분의 세계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초 ‘우한 폐렴’으로 불린 이 병의 환자는 하루 수십명씩 발생했다. 하지만 우한시와 중앙정부는 바이러스가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고 또 잘 통제되고 있다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우한 폐렴은 이후에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름 붙여졌다.
1월 20일 저녁에서야 중국 호흡기 질병 권위자라는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가 나와서 “질병이 야생동물에서 사람에게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람 간에도 전염이 된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그것도 공식 발표가 아니고 개인 차원의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이후 사태의 전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월 23일 우한이 전면 봉쇄됐지만 이미 바이러스는 중국과 한국 등 세계로 퍼져 나갔고 1년여가 지난 지금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수렁에 빠져 있다.
당시 우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고 아마 영원히 비밀로 묻힐 수도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한에서 1월 중순에 지방양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1월 6일에는 우한시 양회가, 1월12일에는 후베이성 양회가 각각 예정된 상태였다. 이어 19일에는 춘제(한국의 설, 25일)를 며칠 앞두고 4만여명이 참가한 초대형 춘제행사가 우한 안에서 열리기도 했다.
‘양회’는 중국에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다. 매년 1~2월에 지방단위의 양회를 개최하고 이어 3월 초에 이를 종합하는 전국양회를 베이징에서 연다. 특히 2020년 중국 정부가 전국양회에서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사회’를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있었다. 1월 7일 열린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중앙 영도인은 ‘예방 조치에 주의를 기울이되 이로 인해 지나치게 공포심을 불러 다가오는 춘제 분위기를 망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홍콩 명보가 보도한 바 있다.
결국 우한 당국이 양회 행사를 망치지 않으려고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숨겼다는 것이다. 사실의 은폐가 없었고 지역 봉쇄가 빨랐다면 수천만의 세계인을 구할 수 있었을 테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났다. 코로나19는 겨울철을 맞아 다시 활동력을 높이고 있다. 중국에서 작년 9월에 코로나19를 사실상 퇴치했다고 한 승리 선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올해 1월부터 또다시 지방양회가 열리고 있다. 수도 베이징에서는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베이징시 양회가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2년째인 올해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오히려 작년과 정반대다. 중국 정부는 양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과잉 방역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제(2월12일) 연휴를 앞두고 중국 정부는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 모임과 귀성 등을 자제할 것을 경고했다. 사실상 이동금지령이다. 중국 정부는 1~2월 지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코로나 검사를 통해 음성 확인증을 휴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국양회 개최 지역인 베이징 정부가 특히 방역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앞서 신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순이구와 다싱구는 전 주민에 대한 코로나19 전수검사를 반복적으로 실시했다. 베이징은 이미 다른 지역 차량의 출입을 아주 까다롭게 하고 있다. 베이징과 인접한 허베이성의 스자좡·싱타이·랑팡 지역은 이미 전면 봉쇄했다.
최근 장쑤성의 한 도시를 방문한 교민 A씨는 관광지에 입장하려는데 코로나 검사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해서 황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가 베이징에서 왔다는 한 가지 이유에서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은 여전히 악화되고 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지린성 퉁화 지역에서 확진자 1명이 숨졌다. 앞서 13일 허베이성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이들은 거의 8개월 만에 새로 발생한 사망자다. 코로나19 지역사회 신규 확진자는 매일 100명 내외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진자 판정이 까다로워 사실상 더 많은 감염자가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방역을 이유로 중국 입국 외국인에 대한 코로나19 진단 검사도 독해지고 있다. 격리 기간이 기본적인 2주의 두 배인 4주로 늘린 지역도 나오는 실정이다. 구강·혈청 검사 외에 정상국에서는 인권침해 사안인 ‘항문검사’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만을 두고 볼 경우 지난해 전국양회가 연기해 개최된 5월보다 더 강력한 상황이다. 이를 통해 중국 당국은 양회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양회가 가진 의미 때문이다. 양회는 중국 공산당의 중국 지배 정당성을 과시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앞서 중국 정부는 올해 양회 행사로 오는 3월 3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이어 4일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린다고 공고했다. 즉 두 행사를 합쳐서 ‘양회(兩會)’라고 부른다. 전인대와 정협은 1년에 딱 한번 모인다. 그래서 연중 최대 행사가 된다.
전인대는 비교하자면 한국 등 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에 해당한다. 물론 정상적인 국회는 아니다. 전인대 대표들은 중국인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표를 국가가 임명하기 때문에 비교하자면 과거 유신시대의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유사할 수도 있다.
정협은 더 독특한 제도다.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전략 수행을 담당하는 기구라고 보면 된다. 정협은 공산당을 비롯한 각 당파, 사회단체들의 모임이다. 여기에 직업조직들도 참여한다. 예를 들면 바이두의 리옌훙 회장, 전 농구 선수 야오밍 등도 현 정협 위원이다.
‘국회’가 있는데 또 정협이 있는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전인대는 ‘대회’(영어로는 Congress)이고 정협은 ‘회의’(Conference)다. 중국에서는 사실상 정협이 전인대보다 더 중요하다. 정협이라는 조직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기본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장제스의 국민당에 승리하면서 대륙에서 중화민국이 붕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됐다. 국민당은 대만으로 달아났고 지금도 ‘중화민국’으로 남아있다. 공산당의 승리는 전투에서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제스의 독재에 반감을 가진 다른 당파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보였던 마오쩌둥을 지지한 결과였다. 물론 그들은 이후 곧바로 후회를 하게 된다.
공산당 주도로 제 당파가 모여 국가를 건설하기로 했고 이것이 1949년 9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전국정협 제1기 전체회의였다. 우리가 보는 유명한 톈안먼광장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성립’ 선포는 정협 회의의 다음날인 10월 1일이었다.
이에 비해 전인대가 처음 열린 것은 1954년이다. 그해 전인대에서 이른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통과됐다. 중국에서 건국 후 5년 동안이나 ‘헌법’이 없었다는 것인데 이는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법치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이후 1959년 전인대와 정협이 같은 시기에 개최되며 ‘양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는 양회가 현재처럼 3월에 개최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물론 정협이나 전인대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권력의 상호견제를 위한 입법조직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일당지배를 포장하기 위한 무대장식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장식이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양회가 잘 열려야 중국이란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추진하는 14차 5개년 계획(14·5계획)과 2035년까지 진행할 장기발전 계획 기간의 첫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미 2035년까지 중국 국내총생산(GDP)을 두 배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러한 계획은 공식적으로 양회를 통해 확정되고 승인된다. 올해 양회, 특히 전인대가 최근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시진핑의 장기집권과도 관련되는 문제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코로나 양회’ 2년째가 될 올해도 코로나19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양회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업무보고’라는 형식으로 그해의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분위기는 이미 좋다. 중국은 지난해 2.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주요 국가 가운데 플러스 성장을 한 것은 중국이 유일했다. 특히 올해는 8%라는 상당히 높은 성장률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다만 일부 관변학자들은 정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업무보고의 핵심인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경제사정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다. 또한 작년에 플러스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행했고 이것이 부채위기를 불러왔다는 내부 판단에 따른 것이다.
26일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인 마쥔 칭화대 금융·발전연구센터 주임은 최근 중국자산관리50인포럼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올해를 시작으로 영원히 GDP 성장 목표를 폐지하고 고용 안정과 통화팽창 통제 같은 거시 정책을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장리췬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연구원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경제성장률 목표가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했던 작년 중국은 이례적으로 한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각 지역의 올해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공개하고 있다. 중앙 정치야 어떻든 지방 관료들에게 성장률은 자신의 직위가 걸린 문제다. 최근 지방양회 업무보고에서 수도 베이징시와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시는 각각 ‘6% 이상’을 올해 목표로 내놓았다. 지난해 이들 도시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1.2%, 1.7%에 그쳐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또 성급 행정구역 중 경제 규모가 가장 큰 광둥성은 올해 ‘6% 초과’를 목표로 제시했다. 중국에서 유일한 자유무역항으로, 홍콩의 맞상대인 하이난성은 올해 ‘10% 초과’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목표를 잡았다. 이 밖에 지방양회를 개최한 허난성과 산시(산서)성의 경제성장률 목표는 각각 ‘7% 이상’, ‘8%’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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