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동통신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압박하고 있는 데다 시장에서 ‘메기’ 역할을 하는 라쿠텐이 지속적으로 값싼 요금제를 내놓으며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어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자사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2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라쿠텐모바일은 오는 4월부터 휴대전화 데이터 용량이 20GB 이하이면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NTT도코모, 소프트뱅크, KDDI 등 상위 이동통신 3사가 3월부터 20GB 용량의 새로운 저가 요금제를 도입하기로 한 데 따른 대응이다. 라쿠텐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월 2,980엔(약 3만2,000원)으로 유지하되 저용량 요금제의 경우 가격을 내려 타 통신사와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판 쿠팡’격인 라쿠텐은 이동통신 3사가 과점하고 있는 시장에 참여해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해왔다. 월 2,980엔짜리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 시장 경쟁에 불을 붙였다. 라쿠텐의 가격 정책으로 인해 다른 이동통신 3사도 20GB짜리 요금제의 가격을 월 2,980엔으로 낮추게 됐다. 시장을 과점한 이들 3사가 가격 인하에 나선 것은 스가 총리의 휴대전화 인하 압박과도 관련이 깊다.
이렇게 소프트뱅크 등이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자 라쿠텐은 또 한번 가격을 내려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닛케이는 익명의 한 관계자를 인용해 라쿠텐이 20GB 이하 요금, 1~3GB 이하 요금을 각각 1,980엔, 980엔으로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라쿠텐의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상위 이동통신 3사는 또 다시 가격 고민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 회장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 같은 이동통신 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27일 소프트뱅크는 미야카와 준이치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승격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현재 소프트뱅크 사장과 최고경영자(CEO)를 겸직하고 있는 미야우치 겐은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손정의는 소프트뱅크 회장에서 물러나 ‘창업자 이사’직을 맡게 된다. 그는 소프트뱅크그룹(SBG)에서는 변함없이 사장 겸 회장으로 활동하며 대표권을 행사한다고 소프트뱅크와 SBG 측은 설명했다. 인사는 올해 4월 1일 자로 실행된다.
이번 인사에 따라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에 대한 관여를 줄이게 되며 소프트뱅크는 경영의 세대교체를 시작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인사에 관해 “지속적인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경영진 세대교체를 꾀하고 현재의 경영체제가 지니는 장점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라인과 당사의 자회사인 Z홀딩스의 경영통합으로 당사 그룹 체제가 크게 바뀌는 2021년 봄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설명했다.
미야카와는 소프트뱅크가 2006년 영국 보다폰 일본법인을 매수해 휴대전화 사업에 참여한 후 통신 품질 향상에 매진하는 등 통신 전문가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2013년 매수한 미국 스프린트(현 T모바일US)의 재건을 담당하고 CTO로서 소프트뱅크의 네트워크 정비 책임자를 겸하는 등 5G 네트워크 정비도 담당했다. 그는 도요타자동차와 소프트뱅크가 공동 출자한 모네 테크놀로지의 사장을 겸하고 있으며 신사업 발굴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디어맨’으로 알려져 있다. 스가 정권이 국정 과제로 내건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소프트뱅크 등 주요 통신사가 수용하면서 통신 분야 경쟁이 치열해지고 소프트뱅크의 주력 사업인 휴대전화 수익성이 악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미야카와는 비통신 분야의 사업 확대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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