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정상 간 통화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의 '안보 불협화음'이 벌써부터 노출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속도전’을 고수하는 우리 정부와 달리 미 국방부는 ‘신중론’ 에 쐐기를 박았으며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미묘한 입장 차가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새벽 정상 통화’까지 강행하며 미국과 밀착도를 높여 미일 정상이 위안부·징용 문제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을 중심으로 반중(反中) 전선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전통의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우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28일(현지 시간) ‘임기 중 전작권 전환을 위한 진전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서욱 국방부 장관의 최근 발언과 관련해 "전작권은 상호 합의한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 때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작권과 관련한 바이든 행정부의 첫 공개 입장으로 ‘임기 내 성과’를 강조한 서 장관의 발언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방부는 특히 "특정한 시점에 대한 약속은 우리의 병력과 인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적어도 전환 연도는 합의하자’는 우리 측 입장에도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더해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한미 간 입장 차도 감지됐다. 미 국방부는 "우리는 군사훈련과 연습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면서 "그 가치가 한반도보다 중요한 곳은 없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훈련 축소 등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해왔으나 미국은 정상적 훈련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간에 이처럼 간극이 벌어지는 가운데 미일은 보다 끈끈한 공조 체제로 돌입했다. 2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일 정상은 최근 통화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 소송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당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8일(현지 시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은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연기하는 ‘대화’ 중심의 정책을 폈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더 이상 한미 동맹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외교 라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고수하면서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과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의 외교 전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우리도 한미일 협력에 방점을 찍고 외교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처음으로 한미연합훈련과 전작권 전환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향후 한미 동맹의 방향을 제시했다. 눈에 띄는 점은 미국 국방부가 꺼내 든 ‘오늘 밤에라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Ready to Fight)’는 한미연합훈련의 모토다. 미국이 항시적 전쟁 준비 태세를 강조하면서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해서는 연합훈련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우리 국방부의 입장을 맞받아친 것으로 해석된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 입장에 휘둘려 연합훈련을 줄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가 “전작권 전환의 시점을 명시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도 대북 억제 능력을 지속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7일 “재임 기간 중 전작권 전환에 대한 진전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어려우나 ‘전환 시기’라도 확정하겠다는 우리 군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특정한 시점에 대한 약속은 우리의 병력과 인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이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군의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검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한미연합훈련이 수차례 축소·연기된 점이 미국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우리 국방부는 논란이 불거지자 “국방부 장관이 기자 간담회 시 ‘진전된 성과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언급한 것은 우리 군의 능력 구비를 가속화하고 미국 측과의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틀 속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취임 전 ‘대북 억제력 강화’와 ‘동맹 외교’를 내세우면서 이미 예견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상 외교를 ‘보여주기식’이라고 여러 차례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훈련을 축소하거나 연기해 만들어낸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성과가 없다고 깎아내린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신 강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실무 협상으로 북한을 비핵화시키겠다는 대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웬디 셔먼 부장관, 정 박 동아태 부차관보 등 ‘대북 제재론자’들로 구성한 미 국무부 대북 라인이 이를 방증한다. 블링컨 장관은 19일 인사 청문회에서 “어떤 선택지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지 들여다보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이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위한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가운데 우리 외교 당국은 기존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반복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21일 내정된 직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5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대화와 상생을 통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하반기 중 남북 관계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를 외면하는 사이 한미일 삼각 체제에서도 점차 이탈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8일 아시아 정상 중 최초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새벽 통화를 강행했으나 문 대통령과의 통화 일정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일 정상은 전화 통화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소송 문제에 관한 의견까지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또 “양국 정상이 핵·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나 한일 과거사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보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미국이 먼저 청취한 셈이다.
이처럼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통째로 뒤바뀌는 가운데 우리가 보다 유연한 외교 원칙으로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대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공조가 필요하다”며 “한미 동맹을 복원·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센터장은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 미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일본에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인엽·허세민·김정욱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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