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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파괴? 블랙워싱?…존재감 커지는 흑인 주인공

'뤼팽''브리저튼''더 위쳐' 등

해외 드라마·영화에 주연 발탁

판타지·시대물까지 배역 넓혀

'정치적 올바름' 이유 내세워

실존 백인까지 지나치게 왜곡

'억지 캐스팅' 주장도 만만찮아


해외 드라마나 영화에서 유색인종을 캐스팅하는 배역의 범위가 부쩍 넓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무조건 백인 남녀가 맡았던 과거의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지만, 최근에는 궁정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나 판타지물, 심지어 실존했던 역사 속 백인 인물의 배역까지 흑인 배우가 맡는 경우가 눈에 띈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반영해 인종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이유로 억지 캐스팅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의 한 장면. 원작 소설을 재해석한 이 작품에서 현대의 아르센 뤼팽 격인 주인공 아산(오마르 사이 분)은 아프리카계 이민자의 아들로 설정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글로벌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최근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물에서 잇따라 유색인종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워 화제를 불러 모았다. 지난달 초 공개된 ‘뤼팽’은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아버지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재벌을 향한 복수극을 다뤘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작품은 공개 한 달 만에 전 세계 7,000만 명의 유료 시청자를 확보하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원작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뤼팽이 세네갈계 이민자의 아들로 설정됐다는 점이다. 원작 속 아르센 뤼팽 캐릭터는 프랑스인 백인 바람둥이였지만, 프랑스 인기 배우 오마르 사이가 연기하는 드라마 속 뤼팽은 대중의 이미지 속 뤼팽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거구의 흑인이다. 작품은 소설로부터 영감을 얻어 이를 오마주하는 방식으로 캐릭터의 직접적 비교를 피해간다. 원작 시리즈의 출발점인 여왕의 목걸이 사건부터 가장 유명한 기암성의 결투까지 대표작의 서사를 따라간다.

그보다 앞서 공개된 ‘브리저튼’은 아예 19세기 영국에 흑인 귀족과 왕비가 존재한다는 파격적 설정을 선보였다. 이 역시 원작 소설의 백인 캐릭터들을 영상화 과정에서 뒤집은 것이다. 남자 주인공인 헤이스팅스 공작은 흑인 배우 레지 장 페이지가, 왕비 역할은 골다 로슈벨이 각각 연기한다. 드라마의 역사적으로 있을 수 없는 파격 캐스팅으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낳았다. 인종 다양성을 높이면서 재미도 잡았다는 호평과 원작과 달라진 인물 설정이 집중을 방해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브리저튼은 전세계 76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에 올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밖에도 최근 제작에 들어간 ‘더 위쳐’ 프리퀄 시리즈에는 자메이카계 영국 출신의 흑인 여배우 조디 터너스미스가 판타지 장르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됐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의 삶이 스크린에 투영되도록 하자’는 게 넷플릭스의 기본 방침”이라며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내 모습 같다’는 점을 느낄 때 공감대가 올라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작년 말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의 한 장면. 레지 장 페이지(오른쪽)이 연기한 남자주인공 헤이스팅스 공작을 비롯한 주요 배역을 흑인으로 설정해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인종적 다양성을 고려해 유색인종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은 넷플릭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100만 관객을 넘긴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제작 당시부터 재즈피아니스트를 꿈꾸는 흑인 음악 교사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으로 화제가 됐다. 디즈니, 픽사가 그간 흑인이 주인공인 작품을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소울’ 제작진은 이 작품을 보며 ‘톰과 제리’ 등 과거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드러났던 인종 차별적 캐릭터가 떠오르지 않도록 캐릭터를 만들어갔다”고 전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이 작품은 디즈니 작품 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코리아


디즈니는 최근 추진 중인 애니메이션 원작의 실사화 과정에서도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하고 있다. ‘피터팬’의 실사 영화 ‘피터팬과 웬디’에서 요정 팅커벨 역으로 흑인 배우 야라 샤히디를, ‘인어공주’ 실사판에서는 주인공 아리엘 역으로 검은 머리의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각각 선택한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유색인종 캐릭터에까지 무조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명 ‘화이트워싱’이나 백인 배우에 유색 피부 분장을 하는 ‘블랙페이스’로 비판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커다란 변화다. 다만 일각에서는 배역과 맞지 않는 지나친 흑인 캐스팅이 ‘블랙워싱’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위쳐 프리퀄에 출연하는 터너스미스는 영국 채널5가 제작 중인 드라마에서 영국 국왕 헨리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역할로 캐스팅됐는데, 이를 두고 실존 백인을 흑인으로 바꾼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인어공주 실사판에 대해서도 만화 영화 속 아리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NotMyAriel’(#나의아리엘이아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로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블랙워싱’ 주장 역시 인종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대세다. 브리저튼의 원작자인 소설가 줄리아 퀸은 다양한 인종의 캐스팅에 만족한다며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더해 브리저튼이 현실 세계와 비슷해지고, ‘세상이 이렇게 돼야지’ 라고 생각하게 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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