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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오梅!...남녘엔 봄이 터진다

■매화향 가득한 '양산 통도사'

고즈넉한 절 가운데 300년 매화나무 우뚝

혹독한 추위 뚫고 붉은 '봄의 전령사' 만발

영각 앞 화려한 자장매는 벽화같은 착각을

고찰 곳곳 청단풍·산수유도 꽃망울 터질듯

금강계단·봉발탑 등 불교 보물 탐방은 덤

극락보전 옆 만첩홍매는 평소 붉은색에 가깝다가도 햇빛을 받으면 연한 분홍색을 띤다.




우수를 지나 경칩이 코앞이다. 날씨가 추웠다가 따뜻해지기를 반복하면 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건 아무래도 꽃이다. 그중에서도 매화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다. 남쪽 지방에서 얼마 전부터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이른 봄 제일 먼저 꽃을 피워내는 매화처럼 올해는 모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겨내고 꽃놀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남 양산으로 향했다.

통도사 영각(影閣) 앞 ‘자장매(慈藏梅)’는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영각 주변은 이미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양산을 찾은 이유는 오로지 통도사 홍매화 때문이다. 통도사는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매화가 피는 곳 중 하나다. 매화는 예부터 꽃이 일찍 핀다고 해서 조매(早梅)·한매(寒梅)·설중매(雪中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색에 따라 홍매·백매·청매 등으로 구분한다. 그 종류만큼 개화 시기도 제각각이다. 일부는 봄이 오기도 전에 서둘러 첫 꽃을 피워내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금세 움츠러들기 때문에 만발한 매화를 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매화는 겨울에 첫 꽃을 피우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금세 움츠러든다. 이 때문에 만개한 매화를 보려면 2월 말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통도사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춥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한겨울이다. 성보박물관 앞 도롯가에 심긴 능수매화는 아직 꽃망울이 열리기 전이다. 조급한 마음에 지름길인 천왕문 옆 쪽문을 통과해 극락보전 매화나무부터 찾았다. 불과 200m 거리인데도 거짓말처럼 나무에 꽃이 한가득하고 주변은 매향으로 가득하다. 경내에서도 제일 남쪽에 자리한 매화나무는 아침까지만 해도 꽃잎을 닫고 있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자 화사한 분홍 빛깔의 꽃잎을 활짝 펼쳤다고 한다.

통도사 만첩홍매와 분홍매 두 그루가 올해도 나란히 꽃을 피웠다.


극락보전 옆 두 그루의 매화나무는 진분홍색의 만첩홍매와 연분홍색을 띠는 분홍매다. 나란히 심긴 수령 300년인 두 그루의 나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매년 동시에 꽃을 피운다. 탐매(探梅)객들 사이에서 인기는 단연 홍매화다. 분홍이라기보다 붉은색에 더 가까운 홍매화는 주변 풍경과 대비를 이루며 유독 더 눈에 띤다. 반면 은은한 빛깔의 분홍매는 소박한 절집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나무 주변으로는 아마추어 사진가부터 불자들까지 활짝 핀 매화를 사진으로 담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통도사를 찾은 불자들이 올해 처음으로 마주한 꽃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통도사를 대표하는 매화나무는 따로 있다. 주인공은 영각(影閣) 앞에 자리한 홍매화다. 이 나무는 통도사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심으며 율사의 법명을 따서 ‘자장매(慈藏梅)’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때가 1643년이니 올해로 378살이다. 자장매는 앞서 본 만첩홍매나 분홍매보다 크고 화려하다. 사방으로 길게 늘어뜨린 줄기마다 분홍색 매화를 한가득 매달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영각전에 그려 넣은 벽화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건물과 나무가 함께 어울려 지낸 지도 400년 가까이 되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장매는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앞선 두 나무처럼 가까이서 감상하기는 어렵지만 코끝으로 전해지는 향기가 훨씬 더 진하다.

은은한 빛깔의 분홍매는 천년고찰의 색이 바랜 단청과 잘 어울린다.




통도사 경내에는 매화나무 말고도 청단풍·산수유·은목서·홍도화 등 꽃나무가 곳곳에 심겨 있다. 자장매가 지기 시작하는 3월 초부터 하나둘 꽃을 피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꽃구경을 한참하고 나니 그제서야 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통도사는 해인사·송광사와 함께 선원과 강원을 모두 갖춘 오대총림 중 한 곳이자 국보·보물 등 다양한 불교 관련 문화재를 보유한 불보사찰이다. 하지만 사세에 비해 소박한 고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서로 길게 펼쳐진 가람배치는 총 46개의 전각을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제일 동쪽으로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이 있는 상로전, 이어 봉발탑(보물 제471호)과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이 있는 중로전, 영산전(보물 제1826호)과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이 있는 하로전이다.

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금강계단 옆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하로전 영역에 있는 매화를 봤으면 불이문을 통과해 중로전과 상로전까지 둘러볼 차례다. 봉발탑은 부처님의 의발을 미래에 출현할 미륵불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이다. 제일 위쪽 금강계단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경책을 봉안한 자리다.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웅전은 동서남북 각기 다른 편액을 내걸고 있는데 남쪽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는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대가람으로도 유명한 통도사를 다 둘러보려면 하루를 꼬박 할애해야 할 만큼 방대하다. 불자가 아니라면 경내를 산책하듯 가볍게 둘러보다 산문을 빠져나오면 된다. 통도사 무풍교에서 일주문까지 1㎞가량 이어지는 솔숲길 무풍한송로를 걷는 것은 통도사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통도사는 주변에 19개의 산중 암자들도 거느리고 있다. 불자들에게는 영축산을 따라 통도사 암자들을 차례로 둘러보는 암자순례도 인기다. 여러 암자 중에서도 서운암은 매년 봄마다 열리던 들꽃축제로 유명하던 곳이다. 그 서운암이 지난 2012년 장경각을 건립해 16만 도자대장경을 봉안했다.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을 도자기판 16만 장으로 구워냈다. 장경각은 도자대장경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로 내부로 들어가면 차곡차곡 쌓인 대장경을 구경할 수 있다. 서운암까지는 통도사 입구에서 편도 1㎞ 거리로 계곡을 따라 산책 삼아 걸어도 되고 차를 타고 올라가도 된다.

서운암 장경각은 16만 장의 도자대장경으로 채워져 있다. 목판 팔만대장경과 달리 양면이 아닌 한 면에 새긴 도자대장경은 제작에만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장경각 방문객들은 16만 장의 도자대장경 도판 사이를 미로처럼 빠져나가야 한다.


/글·사진(양산)=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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