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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항의 또는 호소…DJ·YS도 피하지 못했던 ‘계란 세례’

지난 5일 이낙연, 춘천서 계란 맞아

계란 맞은 역대 정치인 사례 다수

총리·장관·지차제장도 봉변 당해

이낙연 “하고 싶은 말 있었을 것”

처벌 원하지 않는단 뜻 직접 밝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후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을 걷던 중 갑자기 계란이 날아들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강원도 춘천 중앙시장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중 난데 없이 날아든 계란에 얼굴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이 대표에게 계란을 던진 사람은 춘천 레고랜드 조성 사업 반대 운동가였고, 폭행죄로 처벌 될 수 있었으나 이 대표가 처벌을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을 경찰 측에 직접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역대 정치인들의 ‘계란 세례’ 수난사가 새삼 한번 더 주목 받고 있다.

춘천 경찰은 사건 직후 이 대표가 “그 분들로서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을 것"이라며 처벌 불원 의사를 직접 밝힘에 따라 계란 투척 여성 등을 입건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란 투척은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할 경우에는 폭행죄 처벌 대상이 된다. 사안에 따라 모욕, 상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죄목으로도 처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기 위해 종종 특정인을 향해 계란을 투척 하곤 한다. 특정인은 주로 사회적 영향력과 주목도가 큰 정치인이다.

1987년 11월 15일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대구 두류산 공원에서 열린 군부 독재 종식과 지역 감정 해소를 위한 영호남 시민 결의 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던 중 신원 미상 청년들이 던진 계란이 단상으로 날아들자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연합뉴스


계란은 ‘양반’…돌도 날아들던 위험한 시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야당 정치인 시절 가는 곳마다 구름 같은 인파를 몰고 다녔지만 그 만큼 반대파로부터 많은 야유와 항의를 받았다. 한 예로 1987년 11월 대구 두류공원에서 대학생 주최로 열린 영호남 시민 결의 대회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면서 여러 차례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그가 연단에 오르자 계란은 물론 돌까지 날아들었고, 지지자들이 가림막을 들고 수시로 김 전 대통령을 순간 순간 에워싸야 했다. 연설 역시 여러 차례 중단 됐지만 끝내 마무리 됐고, 그는 대회 직후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회가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협조해 준 대구 시민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물론 워낙 인파가 많았던 탓에 투척자들을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9년 6월 3일 일본 방문을 위해 김포공항에서 이동하던 중 붉은 색 페인트가 든 달걀에 얼굴을 맞자 경호원들이 황급히 김 전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다./연합뉴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9년 6월 김포공항에서 계란을 맞은 사건은 1차적으로 외관 상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일본 방문을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구호 속에 웃으면서 이동하던 중 재미교포 박의정씨가 던진 계란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다. 심지어 단순한 날계란이 아니라 빨간 색 페인트가 주입 된 계란이었고,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은 시뻘건 페인트로 범벅이 됐다. 김 전 대통령 측은 경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경찰에 강력히 항의했고, 박씨는 폭력 처벌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당시 박씨는 계란을 던진 이유로 ‘IMF 책임론’을 들었다.

2002년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강 변에서 열린 농민대회에서 연설을 하던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농민이 던진 달걀을 맞고 입을 감싸고 있다./연합뉴스




노무현 “정치인이 한번씩 맞아줘야 국민 화 풀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계란을 여러 차례 맞았다. 2002년 11월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킴이 대회에서도 연설 도중 한 농민이 던진 계란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다. 계란을 맞은 순간 노 전 대통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진정하고 연설을 계속했다. 후일 계란을 맞았을 때 심정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한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나. 계란을 맞고 나면 문제가 잘 풀렸다”고 유머를 섞어 답했다. 당연히 투척자에 대한 처벌은 요구하지 않았다.

2007년 12월 3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거리 유세를 하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왼쪽 팔 부분에 계란을 맞은 후에도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한번씩 계란을 맞아줘야 하는 정치인'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 2007년 12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거리 유세를 벌이던 중 승려 복장의 남성이 던진 계란에 상체를 맞았다. 계란을 던진 남성은 현장에서 ‘검찰은 BBK 사건의 전모를 즉각 발표하라’는 등의 내용이 적힌 유인물도 뿌렸고, 사건 직후 경찰에 연행 됐다. 이 후보 측은 계란 투척 사건 다음날 곧바로 사설 경호원을 추가로 고용해 근접 경호를 강화했다.

계란이나 물병 투척 봉변을 당한 역대 총리. 사진 왼쪽부터 정원식 전 총리 서리(1991), 정운찬 전 총리(2009), 정홍원 전 총리(2014), 황교안 전 총리(2016)./연합뉴스


역대 총리들도 수시로 계란 세례


정치인들만 계란을 맞은 건 아니다. 첨예한 갈등 현장을 찾은 전직 국무총리나 장관, 지자체장도 수시로 계란 세례를 받았다. 1991년 6월 고(故)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고별 강의 차 방문했다가 학생들이 던진 밀가루와 계란을 맞았다. 당시 계란을 던진 학생 중 여러 명이 사법 처리 됐다. 또 해당 사건을 계기로 과격한 학생 운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기도 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 경북 성주를 방문했다가 계란 봉변을 당했다. 그가 성주를 방문했을 때 국민 3,000여 명이 군청 앞에 모여 사드 배치 반대 및 정부 규탄 대회를 진행 중이었고, 황 전 총리가 나타나자 곧바로 계란과 물병 등이 날아들었다. 이에 황 전 총리는 주민들에게 “사드 배치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지만 사건 직후 경북지방경찰청이 진상 파악 및 폭력 가담자 색출을 위해 수사 전담반을 편성하면서 추가 논란을 낳았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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