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 7명 더 잡은 게 무슨 투기와의 전쟁이냐”
정부가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인 끝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7명만 추가로 적발됐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또 청와대는 3기 신도시와 관련해 비서관급 이상 본인 및 직계가족 368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부동산 투기 의심 거래가 단 한 건도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발표를 두고 셀프 조사라는 한계 때문에 성난 민심을 잠재우는 데 역부족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에 야당은 “투기꾼 7명을 더 잡은 게 무슨 투기와의 전쟁이냐”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직원 가족과 차명계좌 조사가 빠진 의미 없는 결과일 뿐이라며 정부 발표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3차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 합동조사단이 지난 4일부터 국토교통부·LH 직원 1만 4,319명의 ‘본인 거래’를 조사한 결과 투기 의심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13명을 포함해 총 20명이었다고 밝혔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LH 직원이며 국토부 직원의 의심 거래는 한 건도 포함되지 않았다. 20명 중 11명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LH 사장 재직 시 의심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총리는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차명거래 등 의혹은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에서 철저히 수사하고 불법행위는 반드시 처벌 받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당초 계획했던 공공 주택 확대는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발표 결과가 국민적 의혹을 가라앉히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축소 조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야당도 정부의 대응을 혹평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고작 투기꾼 7명 더 잡아내자고 패가망신 거론하며 법석을 떨었느냐”며 “차명거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국토부·LH 직원에만 한정한 이번 조사는 꼬리만 자르고 몸통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이날 전 국민의 공분을 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절차상 허점이 드러나며 조사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조사에서는 차명 거래나 가족 및 직계존비속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부 개인 정보 미제공자의 부동산 거래 내역에 대해서는 접근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조사 미비 사항을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에 의뢰해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 참여도 기대할 수 없어 ‘졸속’ 조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가족·직계존비속, 차명거래 빠진 ‘맹탕 조사'
정부 합동조사단이 이날 발표한 1차 조사 결과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배경으로 ‘국토부 및 LH 임직원’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한 점이 지적된다. 합동조사단은 국토부와 LH 임직원 각각 4,509명과 9,83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파악했다.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등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의 속성상 LH나 국토부 임직원 본인이 직접 토지 거래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족이 제외된 이번 조사는 실효성이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부는 가족과 직계존비속에 대한 수사는 특별수사본부를 통해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차명 거래’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합동조사단은 LH와 국토부 임직원의 부동산 거래 내역을 3기 신도시 6곳(광명 시흥,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100만㎡ 이상 대규모 택지(과천 및 안산 장상)의 토지대장과 교차 검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표면에 드러난 비리만 파악할 수 있을 뿐 실질적인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개인 정보 제공에 늦게 동의한 직원도 이번 조사 결과에서 빠졌다. 정부는 지난 10일 이후 개인 정보 제공 동의서를 제출한 26명(국토부 1명, LH 25명)의 조사 결과는 추가 조사를 통해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특수본에 공 넘겼지만…날아간 9일의 ‘수사 골든타임’
정부는 1차 조사에서 빠진 직계존비속과 차명 거래에 대한 수사를 특별수사본부에 넘기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의혹 제기 이후 8일간 정부가 ‘수사’가 아닌 ‘조사’에 시간을 할애하며 실체 규명의 골든타임을 날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후 합동조사단 구성에 들어갔다. 합동조사단은 이틀이 지난 4일 구성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의혹 제기 일주일이 지난 9일에야 경남 진주 LH 본사와 직원들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기도 했다.
특수본이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경찰 중심의 구성이 ‘맹탕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관련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은 특수본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합동조사단에서도 부동산 수사 전문 검사가 1명 파견되는 데 그쳤다. 합동조사단 단장인 최창원 국무1차장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특수본에 검사가 파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수사권 조정에 따른 원칙”이라며 “지금 수사는 경찰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文 정권 불공정 완결판”…의혹 제기 시민 단체도 불만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 같은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불공정 완결판”이라고 혹평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 비대위 회의에서 “문재인 정권이 입시·병역·부동산 등 3대 공정 이슈 중 특히 부동산에서 민심 역류를 크게 건드렸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수사도 정부 합동수사단에서 할 뿐 아니라 검사를 고작 1명 파견받고 ‘검경 유기적 협력’이라고 보여주기에 급급하다”고 쏘아붙였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 의혹을 제기한 시민 단체들도 이번 조사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합동조사단 발표 직후 논평을 내 “투기 의심 사례를 20건으로 판단한 구체적인 근거와 기준, 투기 의심 사례에 포함하지 않은 국토부·LH 직원들의 토지 거래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들은 또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며 “예견됐던 대로 합동조사단의 조사 방식은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어 "대상이 LH 공사와 국토교통부의 직원들로 한정되다 보니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지인이나 차명을 통한 투기 행위에 대한 조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與의원 가족도 투기 의혹…"검찰 빠진 2차 조사 보나마나"
정부 합동조사단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대한 1차 조사 결과가 이날 발표되자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여당의 현역 의원 가족까지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LH 직원 20여 명만 투기가 의심된다는 정부 발표에 야당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야당은 검찰이 수사에서 배제된 현재 합조단 수준으로 2차 조사에 나서도 ‘맹탕’ 조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조사든 검찰 수사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철저한 진상 조사와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야권이 힘을 합쳐 양심을 좀먹고 국민에 기생하며 국민의 피와 땀을 뽑아 먹는 ‘국민의 기생충’들을 반드시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진상 규명과 부패 척결 의지가 있다면 그것을 마다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광범위한 투기 의혹으로 이번 수사에 검찰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자 정부는 현재 총리실에 파견돼 있는 검사 1명 외에 부동산 전문 검사 1명이 합조단에 추가 파견되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 역시 수사가 아닌 법률 지원에 국한됐다.
결국 수사에서 검찰이 배제된 현재 상황에서 합조단이 2차 조사에 나서더라도 실효성을 갖춘 결과를 내놓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급박한 순간에 청와대와 여당은 왜 ‘검찰 수사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쏘아 붙였다. 앞서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발본색원하라면서도 살아 있는 권력까지 건드릴까 봐 검찰과 감사원은 조사·수사 주체에서 쏙 뺐던 대통령은 비판 여론이 일자 뒤늦게 검경 협력을 주문했다”며 “2차 합조단의 조사도 봐주기 조사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검찰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명을 받아야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 청부 수사기관으로 전락했다”며 “검찰 수사 범위에 빗장을 걸어놓고, 정권의 입맛대로 사건에 따라 검찰의 투입 여부를 결정하는 ‘선택적 수사기관’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 역시 “이런 대형 비리를 수사해본 경험이 있는 검찰에 맡기라”고 거듭 촉구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