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인도·호주 4개 정상이 13일 첫 쿼드(Quad) 정상회담을 갖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민주적 가치에 의해 지배되고 강요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민주주의 동맹을 형성한 데 더해 중국의 첨단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추가 제재 하는 등 본격적인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중국도 미국의 제재 조치에 즉각 반발하는 등 조 바이든 행정부 초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미중 갈등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이날 밤(한국시간) 화상으로 첫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법의 규칙, 항행과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민주적 가치, 그리고 영토의 현상유지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겨냥한 압박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우리는 우리 지역(인도태평양)이 국제법에 따라 통치되고 보편적 가치 유지에 전념하며 강압에서 자유롭도록 보장한다는 약속을 새롭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장위구르 등 소수민족 인권 탄압, 홍콩 민주화 저해 등으로 비판받고 있는 중국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스가 총리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주변 수역에서 현상을 변경하려는 중국의 일방적 시도에 반대한다는 강한 목소리를 냈다”고 직접 밝혔다.
비공개 회의에서는 대중국 압박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쿼드 정상회의를 앞두고 수출 승인 조항을 개정해 화웨이의 5G 장치에 사용될 수 있는 품목의 공급을 제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중국이 시장 점유율의 60%를 차지하는 희토류와 관련해 쿼드 4개국 간 공급망 분산 필요성을 확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4개국 정상은 개발도상국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을 배포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이 자국 생산 백신인 시노팜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백신 외교’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4개국 정상은 올해 안에 대면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전문가 및 고위 당국자 간 회담을 정례화하고 연 최소 1회 외교 장관 회담을 갖는 등 쿼드를 굳건한 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번 쿼드(Quad)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이 한 번도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모든 회의의 의제는 ‘대중국 압박’으로 모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4개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밝힌 △법의 규칙 △항행과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민주적 가치 △영토의 현상유지 네 가지 항목은 중국의 남중국해 세력 확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중국이 주장하는 영유권인 구단선(九段線) 내에서 타국 선박이 항행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지난 달 6일 존 매케인함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시행, 남중국해를 항해했고 지난 11일에는 대만 해협에 해군을 투입하며 중국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항행의 자유를 행사한다고 밝힌 뒤 중국을 향해 “(불법적) 영해기선을 근거로 내해(內海·internal waters)와 배타적경제수역(EEZ) 등의 범위를 더 늘리려고 시도해왔다”고 지적했다. 법의 규칙과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거론한 것은 이같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인 셈이다.
4개국 정상들이 ‘민주적 가치’에 방점을 찍은 것은 ‘민주주의·가치 동맹’을 구성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이번 쿼드 정상회의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성하고 있는 ‘민주주의·인권 블록’의 첫 번째 단계로 평가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민주주의와 인권을 골자로 한 ‘가치 외교’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치 외교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인 평가다. 신장 위구르, 홍콩 등에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인권이 ‘아픈 부위’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쿼드 외에도 ‘G7 확대 정상회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등을 통해 다층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쿼드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서 중국의 확장을 저지하는 1차 저지선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중국은 이 같은 미국의 견제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신장 위구르, 티베트 등 소수민족 인권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중국어 보급을 확대하고 ‘중화민족 의식’을 결속하는 등 ‘정면 돌파’를 예고한 상황이다. 특히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통해 홍콩 통제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홍콩 선거제 개편안을 처리하는 등 미중 간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일본은 이번 쿼드 정상회담 개최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이번 쿼드 정상회담 개최로 미일 간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쿼드 사무국을 맡은 데다가 쿼드 참여에 거부감을 표한 인도를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미국-일본 동맹의 기반하에 유럽의 주요 국가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일본은 이달 초 영국과의 외무·국방 장관(2+2) 회의를 통해 영국이 올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을 파견, 미국과 함께 3국 공동 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스가 총리를 첫 대면 정상회담 상대로 결정한 것 역시 이같은 일본의 노력을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한국은 쿼드 참여를 반대하는 중국과 참여를 독려하는 미국 사이에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10일 쿼드 플러스에 대해 “특정 국가를 배제하겠다는 방향성은 없고, 지역에 공유된 다양한 도전에 대해 협력을 촉진하고 증진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말해 한국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럼에도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다음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특정 국가를 배척하거나 견제하기 위한 소위 배타적 지역 구조는 만들면 안 된다는 게 역대 정부가 추구했던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한국이 쿼드 등 미국 중심 네트워크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청샤오허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12일 중국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에 ‘한국 정부가 쿼드 가입을 놓고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라는 글을 기고해 ”쿼드 가입은 중국과 한국이 이제 막 회복한 전략적 상호 신뢰를 불가피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중 압박’ 참여 요구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는 17일 방한하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 장관은 2+2(외교·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중국 제재 동참을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링컨·오스틴 장관은 15일부터 18일까지 일본은 물론 한국·중국 등과 연이어 고위급 회담을 연다.
미국은 2+2 회담에서 구체적인 반중 전선 참여 방안으로 한국에 △중국 화웨이 등 정보기술(IT) 산업 제재 동참 △미사일 방어망 추가 편입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수출 승인 조항을 개정해 화웨이 5G 장치에 사용되는 품목의 공급을 제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 IT 업체에 가했던 중국산 제품 배제 정책인 ‘클린 네트워크’를 한층 더 강화해 꺼내든 것이다.
또 미국의 경우 대중 압박에 동참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 한일 관계 개선이라고 판단할 경우 이를 우리 정부에 요구할 수도 있다. 블링컨·오스틴 장관이 16~17일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만큼 일본 측의 의견을 수용해 한일 문제 해결 방안을 우리 정부에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 정부의 외교적 선택과 관련해 “전략성 모호성은 시효가 다 됐다”며 “자유 민주주의라는 국제 질서에 맞춰 한국도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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