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후반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을 씻어줄 정치인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박찬종 변호사는 2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해 “껍데기 민주주의”라고 비판했다. “압도적 국회 의석수를 바탕으로 야당을 무시하면서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그는 4·7 보궐선거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적폐를 심판할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력한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뚝심 있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며 야권에서 유일하게 폭발력 있는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으로부터 ‘떼떼(말더듬이)’라는 조롱을 듣고도 아무 말도 못하는 정부의 태도 때문에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4·7 서울·부산시장 보선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년 3월 대선의 전초전이다. 문재인 정권의 집권 4년에 대한 평가도 될 수 있다. 야권에는 현 정부의 적폐를 심판할 기회다. 성추행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물러나고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그 책임을 묻는 심판의 호기라고 할 수 있다. 야권이 서울시장을 잡으면 여권의 폭주 기관차를 상당 부분 멈출 수 있고, 동시에 범야권 결집으로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의 길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절체절명의 선거다.
-21대 국회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삼권분립이 보장된 바이마르헌법을 근거로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 헌법을 고치지 않고 독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의회가 ‘민족과 국가의 위기를 제거하기 위한 법’이라는 명칭의 수권법을 만들어 행정명령으로 총통이 전권을 휘두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형식상 법에 의한 지배를 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도 압도적 국회 의석수를 바탕으로 야당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뭔가.
△대표적인 것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이다. 헌법상 검사에게만 보장된 영장청구권과 수사·기소권을 공수처가 가져가 삼권분립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적이다. 그런 식이라면 마약 사범이 기승을 부린다는 이유로 마약사범수사처를 만들어 검사를 두고 그 검사가 체포해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게 할 수도 있겠다. 같은 논리로 제2, 제3의 공수처와 같은 유령 기관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인들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하고 위헌 요소가 다분한 기업 옥죄기 법안들을 마구 쏟아낸 것도 입법 독재의 증좌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보나.
△김명수 대법원장을 통해 대법원을 장악해 사법부 독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임성근 전 고검 부장판사에게 건넨 말을 들어봐도 그렇지 않나. 대법원장이 임 판사를 탄핵의 제물로 바친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법원 무죄 선고의 경우도 그렇다. 선거 때 토론은 다소 다른 취지로 말해도 된다는 식의 황당한 논리를 갖다 붙였다. 이러다가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대법원에 의해 기사회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입법부·사법부에 이어 검찰을 장악했고 상당수 언론마저 길들여져 자체 검열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권력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계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보장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문제다. 1976년 일본 도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는 일본의 정치 거물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미국 항공기 제조 업체 록히드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전격 체포해 구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권력을 향한 수사에 자꾸 제동이 걸린다. 과거 정권의 대통령 두 사람과 대법원장까지 잡아넣을 때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현재 권력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원전 경제성 조작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니까 제동을 걸고 있다. 이 같은 수사는 윤 전 총장의 의도에 따라 이뤄졌다기보다는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곪아 터진 것을 윤 전 총장이 수사하지 않았다면 되레 직무 유기라고 할 수 있다.
-대선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윤 전 총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여당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에 의해 계속 쥐어박히는데도 끄떡없는 것을 보면 맷집도 좋고 뚝심이 있는 것 같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강인함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윤 전 총장을 최고로 평가할 만하다. 언어 구사 능력도 보통 법조인과 다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이라고 말한 것에서 보듯 그에게는 촌철살인의 레토릭 구사 능력이 있다. 부친의 고향이 충남 공주로 중부권 출신인 것도 강점이다. 게다가 내년 선거까지 이 정권의 불공정에 맞서 싸워왔다는 트레이드 마크가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망론’에 고비는 없을까.
△남북 문제 등에서 경험과 식견이 부족할 텐데, 이 부분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모으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어떤 세력을 등에 업느냐인데, 보선이 마무리되면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유권자들에게 하나같이 피로감을 주고 폭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윤 전 총장이 본격 데뷔하면 국민의힘 분위기도 “윤석열을 밀자”는 쪽으로 모일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이 그 흐름을 타게 되면 재야 모든 세력이 융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대선에서 야권의 유일한 폭발성 있는 후보로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여 남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 국민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훌륭한 인재를 고루 쓰고, 야당을 동반자로 삼고, 수시로 기자회견을 하고, 광화문 광장과 시장 등에서 시민들과 소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들처럼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이라도 자주 했다면 많은 문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패한 것도 기자회견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기자회견이 있었다면 진작에 대통령 주변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와 비선 실세 문제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국민의힘은 수권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체제 아래의 국민의힘은 수권 정당으로서 적합한 대권 후보를 낼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본다. 내년 대선에서 이기려면 야권의 여러 세력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포용력도 없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지도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 투기 의혹으로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25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동안 땅값과 아파트 값만 되레 올려놓았다. 집권 4년 동안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무산되고 2030세대 젊은이들의 결혼 꿈까지 깨져 버렸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공시지가도 따라 오르면서 느닷없이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LH 사태가 터지니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꾸 과거 정부를 탓하는데 박근혜 정권 때는 경제부총리가 ‘빚 내서 집 사라’고 해도 집값이 오르지 않았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전적으로 이번 정부 책임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가.
△부동산 문제는 시장의 공급을 충분히 늘리지 않고 소비를 억제하려는 반(反)시장적 규제에서 비롯됐다. 집권 세력은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가장 실패한 것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다. 이로 인해 자영업자의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크다. 시장이 독점의 폐해로 인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을 때만 정부의 개입이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해달라.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성과가 없다. 북한에 너무 저자세인 것이 문제다. 문 대통령을 향해 북한 측이 “삶은 소대가리”라고 모욕을 준 일이 있고, 최근에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떼떼”라고 조롱했다. 우리 외교부와 청와대에서 즉각 항의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리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의 전술핵무기가 우리나라를 사정권으로 두고 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정권을 보면서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근 한국과 미국 외교·국방 장관의 ‘2+2 회담’에서 보듯 양국 간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 강대국에 휩싸여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뺏기고 전쟁의 참화를 겪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살아남아서 경제 부흥을 이루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 아닌가. 우리가 분단국가인데도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동맹, 한미일 3각 공조 체제를 바탕으로 했기에 가능했다. 그 점을 간과하고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중시해야 한다는 식의 엉뚱한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He is…
1939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학을 나왔다. 고등고시 사법과·행정과와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1973년 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후 공화당 정풍운동 등을 벌였고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학생들을 변론하기도 했다.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압도적 여론 지지율을 등에 업고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와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요즘 유튜브에 ‘박찬종 TV’를 열어 자신의 정치 소신을 밝히고 있다.
/문성진 hns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