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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웨이퍼를 집어 들었고 반도체 전쟁은 시작됐다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가 반도체 산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AP연합뉴스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12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화상 회의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보인 뒤 “이것은 배터리, 광대역망에 쓰이는 것이다. 이것은 인프라스트럭처”라며 “우리는 지난 것을 수리하는 게 아니라 오늘날 새 인프라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반도체=인프라’, 이것이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현재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국가들 입장에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입니다. 관련 소식 전해드립니다.

“美, 반도체 제조시장 점유율 12→24% 목표…미국이 세계 주도할 것”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의미가 크고 중요합니다. 언론이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하느냐, 단어하나와 뉘앙스까지 따지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방문하느냐, 누구를 만나느냐 자체가 이슈가 됩니다. 그만큼 함의가 큽니다.

그런데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웨이퍼를 흔들어 보이면서 “이것은 인프라”라고 했으니,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200%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는 “우리는 20세기 중반 세계를 주도하고 20세기 말에서도 세계를 주도했다”며 “우리는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못 박았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의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삼성전자


이는 미국이 반도체 생산의 중심에 서겠다는 뜻입니다. 미국에는 인텔 같은 비메모리 분야 강자가 있지만 낸드플래시를 비롯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고 파운드리사업에 있어서는 대만의 TSMC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과거 반도체 전쟁에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생산을 포기하면서 자연스레 시장재편이 이뤄졌죠. 반도체 시장 전체로 보면 미국의 제조 점유율은 12% 정도입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가 앞서 발표한 2조2,5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투자 계획 가운데 반도체 산업 몫이 500억 달러인데 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면 19개의 새로운 공장이 세워지고 7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합니다. 특히 12%인 점유율을 24%까지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한쪽의 점유율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가야 합니다. 미국산 점유율이 상승한다는 의미는 다른 국가나 기업에서 만든 반도체의 비중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서로 피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반도체 제조시장 점유율을 △한국 26.7% △대만 22.9% △중국 12%으로 봤습니다.

“韓·中 등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세제혜택 줘”…中 견제용이라고 생각하면 착각


중요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산업 강조를 단순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다는 점을 들어 마치 중국 반도체 산업을 옥죄려고 한다는 식의 분석이 나오는데 이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겁니다.

물론 반도체만으로도 중국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의 구상은 더 큽니다. 밑에서부터 거꾸로 올라가보겠습니다. 이날 반도체 회의는 2조2,5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과 연관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 그 안에 500억 달러어치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이 있습니다.



그럼 인프라투자 계획이 왜 나왔느냐 이것이 중요한데, 이 계획의 목표는 중산층 재건입니다. 중산층 재건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자리를 위해서는 제조업이 부활해야 합니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중산층이 살아나고 제조업이 부활하면 자연스레 달성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연구개발(R&D)와 인프라에 투자하면 더 큰 도움이 되죠.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내 계획은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미국을 다시 만들고 공급망을 보호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이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중국에만 미치는 건 아니겠지요.

미 경제 방송 CNBC는 반도체 분야에서 각국 정부가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는 반도체 공급망이 지나치게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NBC 방송화면 캡처


특히 그가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겠다고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상황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한다고 미국이 세계 최강이 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산업 투자와 시장재편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미국기업들이 정부 지원 아래 다시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며 주요 경쟁국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TSMC나 애리조나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삼성전자가 추가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미국에 공장을 더 지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반도체 공급망이 과도하게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이날 CNBC는 반도체 회의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중국과 일본, 한국, 대만은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과 세제혜택, 기타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미국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보도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500억 달러 지원액이 이들 분야에 나갈 수 있다는 말이지만 다른 나라의 관행이 공정경쟁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공정경쟁을 방해하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나서게 됩니다. 아직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관련 육성계획을 더 봐야 하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인텔 6~9개월 내 자동차 반도체 생산…韓 반도체 전쟁 준비돼 있나


미국이 중국에 하는 것만큼 동맹인 한국에 강하게 나오겠느냐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사실입니다. 중국과 깊숙이 관련되거나 미국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보면 볼수록 그가 과거 영광을 누렸던 미국을 재현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난해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그는 자신의 제너럴모터스(GM) 1967년식 스포츠카 콜벳 스팅레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기자동차 시대를 잘 대비하면 미국이 다시 세계 자동차 시장 1등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적 가치와 인권을 크게 강조합니다.

인텔이 미국 내 자동차 반도체 부족현상을 해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강한 경제는 여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가져옵니다. 제조업이 무너지면서 백인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이들이 불만계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지요. 그 와중에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은 늘었구요. 바이든이 반도체와 제조업을 강조하는 데는 미국 사회전체에 대한 그림도 있는 겁니다. 임기 문제가 아니라면 쉽게,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반도체 칩 생산의 3분의1이 미국기업에 의해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개별 업체의 입장이긴 하지만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듯 그냥 흘려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인텔은 반도체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자동차 업체들을 위해 6~9개월 내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인프라 계획의 의회 통과를 위해 반도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그는 이날 반도체 임원들을 만난 후 양당 의원들을 만났죠.

하지만 기저에 깔려있는 의미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미국이 실제로 반도체 최대강국으로 복귀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도입니다. 이같은 시도를 하는 동안 경쟁사와 경쟁국은 출혈경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각종 비용 부담도 늘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준비가 돼 있는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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