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법인·부동산 등기부등본에서 명의인 주소를 표기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등기부등본에 명시된 주소로 협박 편지가 전달되는 등 개인 정보가 악용되는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정 분쟁이나 행정 처리에 혼선이 예상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27일 ‘등기기록상 개인정보보호 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법원행정처는 연구 용역을 통해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주소에서 행정자치구 미만 주소를 모두 표기하지 않도록 하거나 주소상 숫자를 모두 별(*)표로 처리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통상 등기부등본에는 명의인이나 권리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등이 기재된다. 특히 주소는 동명이인을 구분하기 위해 표기해왔다. 대법원이 연구 용역에 나선 것은 등기부등본상 주소가 범죄 등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로도 동명이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법원행정처는 연구 용역 제안 요청서에서 “등기사항증명서에 기재돼 있는 주소로 찾아가거나 우편물을 발송해 협박하는 등 악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가기관이 부동산 등기명의인과 법인 대표자에 관한 사항을 공시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를 등기사항으로 하고 있어 주소 공시의 필요성이 과거보다 많이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등기부등본에 주소를 기재하지 않거나 일부를 미표기하는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각종 소송 과정에서 다소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등기부등본상 주소가 동명이인을 구분하는 것 외에도 법정 분쟁에서 소장에 기입할 피고를 특정하거나 필요한 우편을 발송하는 용도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소송 과정에서 주소지를 특정할 때 주민등록표를 열람하거나 등·초본 교부 신청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보낸 소송 관련 내용증명이 주소 불명 등 사유로 반송돼야 한다. 반송 서류를 근거로 다시 시·구청 등에 내용증명을 보내는 추가 과정을 거쳐야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부동산 소송에서는 피고의 등기부상 주소를 소장에 쓰도록 돼 있다”며 “개인 정보 보호 측면에서는 필요하나 보완책이 충분하지 않으면 실무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변호사도 “일부 법인의 경우 등기부 공시 주소와 실제 주소가 다른 경우가 있다”며 “소장 송달이 안 되면 대표이사에게 보내야 하는데 주소 공시가 안 될 경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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