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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어준 구도자의 길…마지막까지 "행복하라"[정진석 추기경 선종]

"버리는 것에서 행복 찾아" 신념

가난한 이 위해 배려·희생 60년

각막 기증하고 재산 전액 기부

염추기경 "어머니처럼 만인 품어"

전쟁 겪고 사제길, 최연소 주교에

생명 문제 관심, 줄기세포 반대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마련된 정진석 추기경의 빈소./연합뉴스


28일 명동대성당 대성전 제대 앞의 투명 유리관에 정진석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됐다. 흰색 제의를 입고 머리에는 주교관을 쓴 채 두 손을 곱게 모은 유리관 속 정 추기경은 생전의 여느 때 만큼이나 편안한 얼굴이다. 그 옆으로는 그의 평소 신조이기도 한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 의미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세워졌다.

조문을 위해 아침부터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은 정 추기경의 시신 가까이에서 마지막 인사를 올리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서울대교구는 소속 사제 등에게 조문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지만, 이날 명동성당에는 이른 아침부터 천주교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故) 정진석 추기경./사진제공=서울대교구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인 정진석 추기경이 지난 27일 밤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90세. 정 추기경은 사제들과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정 추기경의 의식이 깨어있을 때 대부분의 대화는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며 "행복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많이 갖거나 누리는 곳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늘 '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정진석 추기경의 첫 영성체 모습./연합뉴스


정 추기경은 1931년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4대째 독실한 천주교 집안으로, 출생 직후 명동성당에서 세례명 ‘니콜라오’로 유아세례를 받은 정 추기경은 명동성당 새벽미사를 하루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년기 대부분을 성당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때는 3년 간 노기남 대주교 복사를 하며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발명가가 꿈이었던 정 추기경이 사제가 된 계기는 전쟁이었다.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그해 발발한 6.25 전쟁의 참상을 겪은 뒤 1954년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1961년 사제 수품을 받은 뒤로는 서울대교구 중림동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해 일했고, 1968년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대학 대학원에서 교회법을 전공했다. 만 39세에 국내 최연소 주교 서품을 받고 28년 간 청주교구장을 지낸 그는 2006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돼 2012년까지 사목활동을 이어갔다.



정진석 추기경이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시절인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자타공인 교회법 전문가인 정 추기경은 사제 서품 이후 1년에 1권씩 책을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 추기경의 저서는 총 51권, 역서는 14권이다. 부제 시절 고 박도식 신부와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1년에 책 1권씩을 내자"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가 펴낸 '교회법 해설(전 15권)'은 동양어로 쓰인 첫 가톨릭 라틴 교회법전 해설서 전집이다. 은퇴 후에도 집필에 매진, 지난해에는 주교 서품 50주년(금강축)을 맞아 '참신앙 진리'와 '교회법 해설(전 6권)' 개정판을 잇달아 내놓기도 했다. 허 신부는 "정 추기경은 평소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매일 오전 4시30분에 기상해 오후 10시30분 잠자리에 들 때까지 대부분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셨다"고 전했다.

정진석 추기경이 2006년 성탄절을 앞둔 12월21일 조계종 사회복지시설인 서울 안암동 승가원을 방문해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과 함께 손을 잡고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연합뉴스


정 추기경은 생명 문제를 사목활동의 최우선으로 둘 정도로 생명 윤리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공식 발언은 자제하면서도 생명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서울대교구 시절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2005년 서울대교구 내 생명위원회를 신설하고, ‘생명의신비상’을 제정해 생명운동에 힘썼다. "배아도 인간 생명"이라며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1961년 3월19일 첫 미사 후 기념촬영 하는 정진석(사진 왼쪽에서 5번째) 추기경의 모습./연합뉴스


사후 장기기증에 서약한 것도 이 무렵이다. 정 추기경은 2006년도 뇌사 시 장기 기증과 사후 각막 기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약했다.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 선종 이후 각막수술을 진행했다. 기증된 각막은 2명에게 증여될 예정이다. 허 신부는 "정 신부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각막 기증에 특별한 뜻을 갖고 계셨다"며 "각막이 증여된 이들에게 새로운 빛을 주실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재산도 전액 명동밥집과 선교장학회 등에 기부했다.

정 추기경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반인 조문도 가능하다. 장례미사는 5월1일 오전 10시에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된다.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28일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선종미사에서 "정 추기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물하셨다"며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처럼 따뜻하고, 배려심 많고, 우리들을 품어주시는데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추모했다.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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