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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대통령 모욕죄 고소 가능'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文, 대리인 통해 전단 배포 30대 모욕죄 고소

“욕해도 기분 풀리면 좋은 일” 과거 발언 회자

좌우 막론 각계각층 비판, 北김여정까지 거론

처벌 의사 취하했지만...추가 고소 여지 남겨

靑, 대통령만 아는 '유사한 모욕' 기준 알려야

차기 정권 이후 반대 국민에 자칫 악용될 수도

2017년 2월 대선주자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JTBC ‘썰전’ 캡처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비방하는 전단을 배포한 30대 남성 김정식씨를 모욕죄로 고소했다가 철회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 모두 임기 동안 비지지자들에게 조롱·모욕을 당한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직접 고소 의사를 내비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 측은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사안에 따라 또 다시 모욕 행위를 한 사람을 고소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를 두고는 대통령이 어느 지점부터 심각하게 모욕감을 느끼는지, 어떤 반발을 수용하고 어떤 비난은 용서치 않는지 국민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권력 비판의 자유가 대폭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음 대통령들은 물론, 다른 고위공직자나 정치인까지 시민들의 비판에 손쉽게 강경 대응할 명분을 제공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청와대. /연합뉴스


文, 대리인 통해 ‘비방 전단 배포’ 30대 청년 모욕죄 고소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배포한 김씨를 모욕 등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9년 7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분수대 인근에서 문 대통령 등을 비판·비방하는 내용의 전단 뭉치를 뿌린 혐의를 받는다. 김씨가 살포한 전단지에는 문 대통령을 ‘북조선의 개’라고 비하하는 내용이 실렸다. 뒷면에는 ‘2020 응답하라 친일파 후손’이라는 문구와 함께 문 대통령,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대표,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사진과 이들의 아버지 등이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행동을 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곧장 크게 논란이 됐다. 모욕죄는 친고죄(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직접 고소해야 기소할 수 있는 범죄)여서 문 대통령 본인이나 대리인이 고소장을 내야만 혐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 고소인을 물었으나 경찰은 “누군지 뻔히 다 알 것이니 말할 수 없다”며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포렌식 명목으로 휴대전화를 석 달간 압수당하고 경찰에 10차례 가까이 출석했다고 주장했다.

설마 대통령이 직접 고소 결정을 내렸겠느냐는 논란이 일어난 사이 청와대는 해당 고소가 문 대통령의 대리인을 통해 진행됐다고 시인했다. 전단 내용이 도를 넘은 비판이라 넘어갈 수 없는 사안으로 판단했다는 취지였다.

북한 김여정. /연합뉴스


“대통령 욕해서 기분 풀리면 좋은 일”이라고 했는데…각계각층 비판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는 즉각 좌우를 막론한 각계각층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현직 대통령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를 직접 억압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었다.

정원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29일 “안타깝게도 이번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의 그릇은 간장 종지에 불과했음을 목도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청년정의당도 지난 3일 “독재국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범죄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모욕죄가 성립되어선 안 되는 대상”이라고 문 대통령을 압박했다. 참여연대 역시 4일 논평을 내고 “권력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그간 밝힌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는다”며 고소 취소를 촉구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지난 발언이 회자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17년 2월에는 JTBC ‘썰전’에 유력 대선주자로 출연해 모욕을 참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참아야죠, 뭐.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문 대통령을 수 차례 욕 보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법의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외교적 대응 만큼은 북한 정권과 김여정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논지였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4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대통령 비판 전단 배포 시민에 대해 처벌 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고소는 취하했지만…추가 고소 뒤끝 남긴 靑

각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결국 고소 취하의 뜻을 내비쳤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2019년 전단 배포 모욕죄와 관련해 처벌 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며 “문 대통령은 본인과 가족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혐오스러운 표현도 국민 표현의 자유 존중 차원에서 용인해 왔으나, 이 사안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 주간지의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며 남북관계·국민 명예·국격에 미치는 해악에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또 고소할 수 있다는 의사를 암시했다는 점이다. 박 대변인은 “앞으로도 정부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선 적어도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취지에서 개별 사안을 신중히 판단해 결정할 예정”이라며 “이번 일이 국격, 국민명예, 국가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누군가’에게 경고했다.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서 또 고소할 수 있다는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앞으로 또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드린 것”이라며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사안의 경중에 따라 (고소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고소 건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알려진 것’은 없다”고 답했다.

김정식씨 페이스북. /연합뉴스


30대 청년 “복잡한 근대사, 진영 이익 위해 멋대로 재단 말라”

모욕 혐의로 고소당했던 김정식씨는 청와대의 고소 철회 발표 다음 날인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그는 “국민을 적폐·친일·독재 세력과 독립·민주화 세력으로 양분해 나라를 반으로 갈라놓는 듯 한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분노해 대통령의 선친께서 일제시절 친일파가 아닌 이상은 불가능한 공무원 신분이었다는 의혹 등에 대한 답을 듣고자 했을 뿐”이라며 “개인의 입장에서는 혐오와 조롱으로 느껴지고 심히 모욕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상적인 이웃 국가의 기업을 '극우' 등의 표현을 빌어 규정짓는 행위는 국격 훼손 및 외교적 마찰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양할 것을 당부드린다”며 “국민의 입장에서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것은 말장난 같은 지지결속용 쇼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 개개인이 상대 국가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갖고 부강해지는 것임을 인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씨는 또 “앞으로 복잡한 근대사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재단하며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2016년 11월26일 ‘군대 안 가고, 세금 안 내고, 위장전입하고, 부동산 투기하고, 방산비리하고, 반칙과 특권을 일삼고,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은, 경제를 망치고 안보를 망쳐 온, 이 거대한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횃불로 모두 불태워버리자’며 대통령이 촛불시위대 앞에서 직접 했던 발언을 귀감 삼아 혹여 스스로 불태워져야 하는 진영의 수장이 되지 않도록 유념하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인해 저의 마음엔 한동안 근심이 깃들었고, 모욕죄 고소를 취하까지 해주시는 너그러운 절대권력자 대통령의 마음은 평탄했으니 대통령은 군자에 가깝고 저는 소인에 가깝다”며 “당시 정부·여당의 반일감정 조장과 국민 갈라치기를 막고자했던 개인적 목표는 제대로 달성하지 못 하고 오히려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것만 같아 부끄럽고 민망함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가 7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대통령 고소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靑, ‘남북관계·국민명예·국격’ 해치는 ‘유사한 모욕’ 기준 알려 줘야

문 대통령의 고소 취하에도 청와대의 뒤끝 반응에 뒷말은 계속 이어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6일 SNS에서 “국민에게 부끄러워하며 사과는 커녕, 왕이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마냥 ‘수용했다’는 표현을 쓰고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도리어 국민에게 엄포를 놓았다”며 “모욕죄로 국민을 고소한 것도 좀스럽고 민망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고소를 취하하면서까지 좀스러운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문 대통령의 모욕죄 고소와 관련해 “주변 참모들이 대통령께서 폭넓게 보시도록 보좌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통령이 국민을 모욕죄로 고소한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받아내기 위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반대 진영 지지자들에게 늘 조롱의 대상이 됐다. 특히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지며 ‘선을 넘는’ 비판이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다만 대통령의 경우 굳이 법적 대응을 하지 않더라도 여당과 청와대 참모, 본인 지지자들이 정치적 방어는 할 수 있다. 똑같은 모욕을 당한 상황에서도 우군이 전혀 없는 일반인과는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다툼의 주체가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과 국민 개인이 될 경우 수사기관부터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동등하게 대할 것이란 기대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낼 고소와 관련, 청와대가 더 구체적인 ‘유사한 사안’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는 비판의 수준과 ‘남북관계·국민 명예·국격’에 해악을 끼치는 표현을 일반 국민 상당수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가짜뉴스를 일삼으며, 국가 원수를 모욕하기로 마음 먹을 정도로 ‘선하지 않고 어리석은’ 국민이라면 그 기준을 더더욱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선의를 갖춘’ 현 정부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모호한 선례가 생길 경우 자칫 여당의 다른 계파나 야당이 권력을 잡은 뒤 반대 국민들을 탄압하는 논리로 악용할 우려도 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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