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
아직 할머니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나이 71세.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아줌마가 됐고, 자녀가 결혼해 손주가 생겨 그렇게 할머니가 됐지만, ‘할머니’란 단어는 여전히 어색하다. 이왕 할머니가 될 거면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김원희 씨. 아니 김원희 할머니. 이 진짜 멋진 할머니가 자신의 멋들어진 인생 2막 삶에 대한 책을 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가 바로 그것.
부산에 사는 여느 보통 할머니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할머니지만, 딱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끌고 자유 여행을 다닌다는 점이다. 해외 자유 여행엔 나이 제한은 없으니까 언제든 짐을 싸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김원희 할머니. 젊은 사람도 두려워한다는 그 해외 자유 여행을 즐기는 할머니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물론 할머니의 해외 자유 여행이 젊은이들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일단 가방부터 다르다. 김원희 할머니의 캐리어를 들여다보면 관절약과 소염제, 찜질팩이 들어있다. 여행하다 지친 다리를 달래줄 약이 필요한 나이라 관절약과 찜질팩은 해외 여행시 챙겨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김 할머니의 해외 자유 여행의 필수 사항은 일단 무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쉼’이 많다. 다행히 그 쉼을 통해 젊은이들과는 다른 눈으로 김 할머니와 같은 곳을 찾은 여행객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곳에는 손을 꼭 잡고 여행지를 걷는 노부부도 있고, 홀로 배낭을 메고 세계 자유 여행 중인 75세 일본 할머니 언니도 있다. 김원희 할머니는 여행지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지나온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해외 자유 여행’이란 멋스러운 단어가 주는 풍족함 이상으로, 내가 그 어려운 행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 그렇게 그리스라는 나라에 와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더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나이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낼 수 있는 것, 그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뭐야> 中-
김원희 할머니는 1950년에 태어났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자랐으며, 젊어서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았다. 김 할머니는 “노년의 나이를 훌쩍 넘기도록 이 나라에서 오래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의 삶을 평한다.
젊어서 항상 해외 자유 여행을 꿈꿨지만, 삶이란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해외 자유 여행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살다 노년이 됐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 결국 이뤘다. 이십여 개의 나라와 그 나라 도시들을 자유로이 여행한 할머니는 자신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이들에게 “노년이 되었다 해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이야기 한다. 노년이라는 건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를 가르는 나이라기보다는 내 마음, 내 의지가 관건인 시기라고 김 할머니는 덧붙여 말했다.
글쎄, 70살쯤 되면 그냥 조금은 아파도 좋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불편한 육신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지고, 이용되어지고 그리고 노화된다. 노화된 것은 새로움으로 교체된다. 자연의 이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뭐야> 中-
70대의 해외 자유 여행이 젊은이의 해외 자유 여행과 다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행에서 배우는 게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김 할머니는 여행을 다니기 전에는 예약은 ‘레저베이션(Reservation)’으로만 알았는데 ‘북(Book)’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면 평생 ‘북(Book)’이 예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 갈뻔했다고 전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얻는 소소한 앎이야말로 노년만이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삶이 아닐는지 김원희 할머니는 이야기 한다.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는 김 할머니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를 한 번 펼쳐보자.
/정혜선 기자 doer0125@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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